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옹년] 한겻의 귀향 上

옹년 전력;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그해 여름은 무더웠다. 매미 떼도 미쳐 돌아버린 여름이었다.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매미 떼가 매섭게 울어댔고, 안 그래도 무거운 날씨를 더 무덥게 만들었다. 성우는 에어컨 없는 좁은 방에서 한창 짐 싸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가방을 챙기며, 머리로는 이국의 휴양지를 떠올렸다. 파랗게 부서지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 해먹에 누워 홀짝이는 핑크빛 칵테일. 저도 호텔 수영장에서 휴가 보낼 줄 아는데요. 입이 댓 발로 튀어나온 성우는 한숨을 쉬다 말고 표정을 단장했다. 쓸데없이 투덜거려봐야 힘만 빠진다. 옹 씨 일가의 철학이었다.

 

성우는 민속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한 연구조교였다. 박사과정 플러스 연구조교의 방학이란. 사실 연구조교라 해서 방학까지 교수와 한 몸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성우의 지도 교수는 좀 특출났다. 김 교수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깊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선택하는 연구 주제마다 특이해서, 천재이자 괴짜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사람 밑에서 연구 일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성우는 선배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박 교수 라인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결전은 치열했고, 4.5 만점에 4.5를 기록하던 선배들이 우르르 박 교수 라인을 점령했다. 성우는 차선책으로 김 교수를 택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사람 밑에 있으면 남는 게 있겠지. 성격은 정중하다잖아. 그러나 성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성우를 환영하는 술자리에서부터 김 교수는 신이 나 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이유였다. 근 일 년간 공들여온 집성촌 연구가 코앞이라며, 성우도 함께할 수 있겠다며. 김 교수가 웃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성우의 얼굴은 파리해졌다.

 

결말은 예상했던 대로다. 성우의 여름방학은 김 교수에게 저당 잡힌 듯 흘러갔다. 옹성우는 짐을 싸다 말고 큰소리로 외쳤다. 노잼 싫어, 노잼 싫다고! 성우의 누나가 머리도 감지 않은 채 물을 마시다가 ‘아, 예’ 하고 그를 비웃었다. 옹성우의 방학은, 대한민국 땅끝 끝자락의 끝자락 섬 어딘가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정체도 알려지지 않은 외딴섬의 집성촌이라니, 설레지 않니 성우야? 외지인 배척이 심하려나…. 김 교수는 로미오를 만난 줄리엣처럼 얼굴을 붉혔다. 저도 민속학 좋아하기는 하는데 방학까지 헌신할 정도는 아니라서요. 설레는 건 교수님뿐이겠죠. 옹 조교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사회적인 옹 조교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수긍했다. 그래도 연구비용은 다 나온다잖아. 여행경비까지 다! 공짜 휴가라니 얼마나, 좋…아. ‘좋아’라는 말을 할 때 성우의 손이 애잔하게 떨렸지만 누나는 동생의 설움을 모른 척했다. 그래, 얼마나 좋아. 무인도에 가까운 작은 섬에 처박힐 예정이라며. 거긴 에어컨 없어도 시원하겠다, 바닷바람 덕에. 누나는 밉살스럽게 성우를 놀리며 욕실 안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에어컨 쬐며 예쁜 카페에서 남친 만나고, 성우는 바닷바람 쬐며 꾀죄죄하게 쓰레빠 끌고 다니고. 누나의 등짝을 때려도 판사님이 정당방위로 판단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성우는 가방 속 짐을 재확인했다. 충전기와 보조배터리를 든 채 성우는 멈춰 있었다. 충전기를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 거긴 전파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무려 섬에 도착하는 데만 1박 2일이 걸리는 코스였다. 성우는 G마켓에서 보조 배터리를 다섯 개 더 주문하고, 아껴두었던 카메라 가방도 정돈했다.

 

낡은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갔다.

출발의 때였다.

 

 

 

/

 

 

 

팔월의 한낮. 성우가 도착한 곳은 땅끝마을의 땅끝마을의 땅끝 섬 어딘가였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배로 갈아타 중간 지점인 큰 섬에 도착하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렸다. 관문지점에서 하룻밤을 묵고 외딴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렸다. 작은 배를 타고 섬 사이를 굽이굽이 헤매어 겨우 도착하니 때는 한낮이었다. 날은 무더웠고 성우는 작은 생수병을 따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작은 선착장에 도착한 옹 조교는 금세 난처해졌다. 아무도 없잖아. 안내인이 나와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안 그래도 성우는 죽을 맛이었다. 김 교수 하나 믿고 따라나선 외딴 섬 기행이었는데, 김 교수가 출발 당일 새벽에 전화를 걸었다. 맹장이래, 성우야. 이제 곧 수술실에 들어갈 것 같거든. 한 귀로 흘려들어도 졸라 아픈 목소리였다. 김 교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단정한 목소리를 가장하고 있었다.

 

“교수님, 맹장 수술 경험 없으셨어요?”

“평생 안 터질 줄 알았지.”

“대단하십니다. 역시 민속학의 미래, 김 교수님!”

“성우야.”

“…죄송합니다.”

 

교수가 큼큼하고 헛기침을 했다. 이내 김 교수는 일생의 부탁이니 뭐니 하며 소란스러워졌고, 결론은 자기가 몸조리를 하고 섬에 도착할 때까지만 시간을 벌어달라는 소리였다. 집성촌마다 생태 방식이 조금씩 달랐는데, 매스컴과 친하게 지내며 동네 자체를 관광 도시화하는 전략도 있었다. 이런 곳과의 컨택은 어렵지 않았지만. 외부 관심을 꺼려하는 집성촌일 경우 연구 허락을 받는 문제부터 까다로웠다. 마을 운영위원회와의 협의가 오래 걸렸다는 것은 성우 역시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취소하고 싶다. 진짜 취소하고 싶어. 일생의 부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라고 옹성우는 생각했지만.

 

“알겠습니다. 교수님.”

 

믿고 맡겨주세요. 어쨌거나 지도 교수의 부탁을 거부하긴 어려웠다. ‘성우야 잘 부탁해. 박사과정 논문은 걱정 말고’ 김 교수는 그 메시지를 끝으로 답이 없었다. 수술대에 실려 간 김 교수에게 건투를 빌며, 성우는 한숨을 쉬었다. 설마 죽기라도 하겠어? 사람의 일인데. 못하는 게 어딨어. 성우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버스터미널 노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성우는 은박지에 쌓인 김밥을 까먹었다. 김밥을 먹으며 성우는 교수에게 넘겨받은 레퍼런스 뭉치를 읽고 또 읽었다.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였다. 그 마을 어디엔가, 말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남아있다고. 선한 말을 들으면 둔하던 몸이 날래지고, 악한 말을 들으면 건강하던 몸도 앓게 된다는 미신 같은 이야기였다. 괴담집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존재할 린 없었다. 김 교수는 말했다. 미신은 흔히 마을 내에서 강조하는 규율을 과장시킨 경우가 많지. 이 마을은 ‘언어’를 중시했을 가능성이 높아. 실제로 억양이 우리나라보다는 일본 사투리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고. 고립된 섬마을 안에 꾸준히 내려온 토착 문화와 방언 연구가 얼마나 재미있겠느냐며, 김 교수는 눈을 반짝였다. 이러니까 교수님이 학파에서 매일 미친놈이라고 왕따 당하는 거예요. 남들이 하는 거나 하면 안 될까요. 제주도 문화 연구 정도 딱 좋지 않나요. 옹성우는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이미 김 교수의 제자가 된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좆된 거 같아.

 

성우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안내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작은 선착장에 혼자 남겨진 성우는, 할 수 있는 일을 헤아려보았다. 자료 사진을 찍기 위해 가져온 카메라를 꺼내 한낮의 바다 앞에 들이밀었다. 렌즈 안에 너른 바다가 넘쳐흘렀다. 생의 감각들이 부서지는 거세고 어둑한 바다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누군가 오긴 하겠지. 아무도 오지 않으면 사람이 올 때까지 여기서 드러누워 있지, 뭐. 다행히 핸드폰 전파는 끊어지지 않았고 그것만으로 성우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모두가 엉망진창인 일박이일이었다. 오기로 한 교수는 사라지고 안내인은 보이지 않고. 한낮의 여름 볕만은 불유쾌할 정도로 맑았다. 잘 보일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는 외딴 섬. 마치 세상의 끝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바다는 끊임없이 잦은 소리를 뱉어냈고, 매미 울음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왔다. 매미는 여기서도 우는구나. 성우는 멍하게 카메라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닷가 앞에 앉아있었을 때, 누군가 등을 툭툭 쳤다.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옹성우 씨, 맞지요?”

 

우리 동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웃는 낯이 고운 여자였다.

 

 

 

/

 

 

 

안내인은 종가의 맏며느리였다. 종부답게 한복을 입고 있었지만, 생활 한복에 가까웠고 움직임이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종부는 친절했으나, 성우는 몹시 긴장한 터였다. 막 대궐 같은 집이 등장하면 어떻게 하지? 막 다들 이상한 말 쓰구, 이상한 인사 방식으로 맞이해주면, 그러면 교수님도 없이 어떻게 하지? 그러나 막상 도착한 동네의 모습은 제주도와 특별히 다를 것도 없었다. 바닷바람 때문에 집의 지붕이 낮고 잿빛이었을 뿐 사람들은 평범한 옷을 입었고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종손부터 느슨한 PK 티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전통 복식 차림새의 종손을 상상했던 성우는 저 홀로 머쓱해졌다. 요즘 시대에 종갓집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종손 내외는 웃음 지었다. 요즘은요, 운영위원회에서 다 알아서 하니까요. 종부가 오신 김에 떡이나 자시라며 손수 빚은 하얀 떡을 안겨주었다. 그나마 동네 사람들의 말씨 끝 억양이 독특하게 떨어져서 방언 연구 정도는 가능하겠다 싶었다. 일본 사투리보다는, 오히려 북측 사투리와 비슷한 억양새였다. 그 점이 조금 특이하기는 했다.

 

식사를 할 시간까지는 아니었기에 성우는 차를 한 잔 얻어 마시고 숙소를 소개받았다. 방이 남아 집주인이 손님맞이를 허락해주었다는 집이었다. 집주인은 출타 중인데 저녁에 들어오면 인사나 나누시라며, 그 말을 끝으로 성우는 혼자 남겨졌다. 성우는 방으로 들어섰다. 한옥 형태의 집이었지만 에어컨도 있었고 전기도 잘 들어왔다. 보조배터리를 다섯 개나 추가로 구매한 것을 성우는 조금 후회했다. 낡았지만 방은 아늑했고 와이파이도 끊어지지 않았다. 성우는 방 안에 짐을 풀고 드러누워 낯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지만,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난해해졌다. 특이한 것 많은 마을이라 들어 굽이굽이 찾아왔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평범하고 평범한 일상의 한복판이었다. 성우는 스마트폰을 들고 교수에게 어떤 감상평을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텄어요, 텄어. 교수님이 바라시는 건 없어요. 지금이라도 서울 연구로 주제 돌립시다. 그렇게 말할까 싶다가도 김 교수가 살피면 연구 자료로 뽑을 만한 내용이 있으려니 싶어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오는 길이 몹시 피로했다. 어차피 일주일 내로 김 교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맹장 수술의 경험을 떠올리며 성우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 뜨니 방이 어둑했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성우는 눈을 껌뻑거리며 방안 형광등 스위치를 찾았다. 상반신을 일으키자, 문득 성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을 눈치챘다. 그림자 하나가 어두운 방에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도 없이 고요한 그림자였다. 으악!! 성우가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세요?! 성우의 새된 비명에 낯선 사람이 얼른 불부터 켰다. 얼굴이 하얗고 눈매가 고양이처럼 매끄러운 젊은 남자가 성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옹성우 씨?”

 

놀란 성우와 달리, 남자는 태평했다. 성우가 숨을 고르고 재차 물었다.

 

“누구세요?”

“집주인이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황민현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멀끔한 얼굴과 나직한 목소리 덕에 성우는 순간 남자의 무례를 용서할 뻔했지만. 성우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 중얼거렸다. 아니, 자는 사람을 가만히 보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성우가 투덜거리자 민현이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너무 잘생긴 얼굴이셔서.”

 

이 방을 통해야 제 방으로 갈 수 있기도 하고요. 실제로 가옥 구조가 다소 기이했던 탓에, 성우의 방은 유일하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과 이어져 있었다. 성우는 문을 한 번 바라보고,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네요.

 

“알지도 못하고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민현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민현은 두서없이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녁은 드셨는지, 여기서 얼마나 머무르다 가는지, 성우가 이 동네에 온 목적은 무엇인지. 마을 운영위원회 및 종손 부부와는 사전 협의가 되어있다고 들었는데, 민현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성우의 방문이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숨길만 한 일도 아닌 것 같아 성우가 입을 열었다. 이 동네의 토착문화와 전설을 조사하러 왔다, 방언 연구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교수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사정상 일주일 뒤에 합류하실 것 같다. 저녁은 아직 못 먹었는데, 같이 드시겠느냐. 마지막 말에 민현이 조금 웃었다.

 

“같이 먹을 수밖에 없어요.”

 

식당이 없는 건 아닌데, 주말 저녁 영업은 안 해요. 민현은 먹을 것을 준비하겠다며 성우는 앉아있으라고 했다. 편하게 계세요. 손님이 오셔서 좋네요. 민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성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성우는 손님답게 가만히 앉아 마음을 졸였다. 뭔가 대단한 레시피가 나오려나. 문화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가 음식이었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민현이 작은 교자상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컵라면 괜찮으시죠?”

 

민현이 경쾌하게 물었다. 아, 컵라면이요…. 네, 좋아합니다! 성우는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스스로를 반성하고 표정을 바로 했다. 성우는 수첩을 열어 끼적였다. 연구의 기본은 메모였다. 첫 식사는 컵라면. 매우 현대화된 마을. 외지인을 경계하는 모습도 덜함. 두 사람은 사이좋게 젓가락을 갈라 컵라면을 삼켰다. 긴장이 풀린 마음에서 먹는 첫 식사는 그럴듯하게 맛이 좋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국수 면발을 삼켰고 국물까지 모조리 해치운 뒤에야 성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민현 씨는 서울 말씨를 쓰시네요.”

“아, 티가 나나요?”

“다른 분들은 끝 억양이 좀 특이하셔서요.”

 

취조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저희가 억양에도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학문이라서. 성우가 혹시라도 민현의 오해를 살까 봐 얼른 말을 덧붙였다. 민현이 빠르게 변명하는 성우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여기서 나기는 했어도, 학창시절은 서울에서 보냈어요.”

“귀향하신 건가요?”

 

귀향이라면 귀향이고. 제가 서울살이를 하기 어려운 체질이라서요. 민현은 그렇게 말하고 묘한 얼굴을 했다. 고민에 잠긴 얼굴이었다. 말없이 인상을 구긴 민현은 제법 냉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우는 긴장했다. 뭐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민현이 약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믿으실지도 모르겠는데. 당분간 같이 살 사이이니 알아는 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성우 씨. 제가 좀 체질이 특이하거든요.”

“아, 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성우 씨라면 문제 될 건 없을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주의해두는 게 좋으니까. 민현이 가볍게 미소지었다.

 

“저는 나쁜 말을 들으면 몸이 많이 아파져요.”

“아, 나쁜 말을 들으시면, 아….”

“제가 미치고 그런 건 아니고요. 진짜 그렇거든요.”

 

성우는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그저 눈만 껌뻑였다. 얼굴이 허옇고 행동이 기이하더니 사실 이 사람, 약간 마음이 아픈 건 아닐까. 성우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생각을 삼켰다.

 

“아무 욕이나 한 번 해주세요.”

“네? 초면에 그게 무슨.”

“얼른요. 괜찮아요.”

“아…….”

 

성우는 이게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상황인가 싶었다. 하지만 욕을 하는 것 외에는 상황을 바꿀 방도가 없어 보였다.

 

“바보?”

“그건 너무 약하고요.”

“좆같다?”

“물음표 떼시고 정확히 하셔야죠.”

“진짜 해요?”

“진짜 하세요.”

 

보셔야 믿지. 답답하게 굴지 마시고요. 욕할 줄 모르세요? 그 말에 성우는 조금 울컥했다.

 

“아, 씨발. 개좆같은 상황이 다 있네. 지금 첫 만남부터 욕이나 뱉으라 하고 이게 말이 되는 거예요, 누구를 사회 부적응자로 아나 씨발!”

“좋아요, 좋아요.”

“안 그래도 김 교수 때문에 개빡치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 민현 씨. 아아악 너무 짜증 나!!!”

 

한 번 욕설을 터뜨리자 쌓아둔 진담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방학은 알바비라도 모아 호캉스를 즐길 예정이었는데, 섬에서의 일주일이 말이 되냐며. 말이 말을 불렀다. 무언가가 나사 풀린 듯 흘러넘쳤다. 그랬어요, 성우 씨? 힘들었겠다. 김 교수님 나빴네. 민현이 맞장구를 쳐주니 성우는 더 신이 났다. 랩이라도 하듯 오 분간 줄줄이 한풀이가 시작됐다. 반은 욕설, 반은 신세 한탄. 대한민국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 민현은 계속 웃고 있었다. 하하하, 성우 씨. 쌓인 게 되게 많으셨나 봐요. 여우에게 홀린 것처럼 제 안에 담아둔 짜증을 모두 폭발하고 나서야, 성우는 갑자기 머쓱해졌다. 술도 취하지 않았는데 한껏 주정을 부린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됐나요?”

“제 예상보다 잘하셨는데요. 충분해요.”

 

성우가 머쓱한 미소를 짓고 가만히 입을 다물자 민현이 손짓을 했다. 가까이 오라는 신호였다. 성우가 다가서자, 민현이 성우의 오른손을 잡아 제 이마 위에 올렸다. 이마가 따끈했다. 정말로 열이 나는 것처럼, 홧홧하게 달아오른 이마가 성우의 손을 덥혀 주었다.

 

“이것 봐요. 열나죠.”

“아…….”

“아까는 멀쩡했잖아요. 그쵸?”

“네. 그러네요.”

“좀 이상한 이야기긴 한데 믿어주세요. 진짜니까요.”

 

민현은 그렇게 말하고 이제 자야겠다며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는 미열로 끝나지만, 진짜 심한 소리를 들으면 많이 아프니까요. 성우 씨도 저한테 나쁜 말 하시면 안 돼요. 저 아픈 거 싫어해요. 그것 때문에 서울살이도 포기하고 여기서 살고 있다고요. 민현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성우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김 교수가 찾던 존재가, 아니 사실 김 교수조차 미신으로 치부하고 웃어넘겼던 존재가, 바로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명확하고 선명하게, 너무나 현실적인 방식으로.

 

 

 

/

 

 

 

아침부터 성우는 종갓집 대문을 두드렸다. 밥상을 준비하며 쌀을 씻던 종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민현이요? 종부는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우아하게 민현의 처지를 대변해주었다. 이야기인즉슨, 황씨 가문에 내려오는 오래된 전설이었다. (당황한 처지에서도 성우는 녹음기를 켰다. 자료 수집을 위해서였다.) 


황씨 가문의 조상 하나가 임신한 아내에게 밥을 해먹이려고 신선 밥을 훔쳤는데, 그 밥은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밥이었다. 천지신명은 불로불사인 신선들이 인간 사회 질서를 흩뜨려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삼월의 꽃과 가을의 볕을 거둬 밥을 지었던 것이다. 꽃과 볕을 고아 만든 식사는 신선들을 선하게 만들었다. 나쁜 것에서 멀어지게, 좋은 것에 가깝게. 신선의 밥을 훔쳐 먹은 황씨 일가는 악한 말과 악한 행동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먹고 소화한 것이 사람을 이루었기 때문에. 좋은 말을 들으면 좋게, 나쁜 말을 들으면 나쁘게 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마을 강령 중 하나라고 종부가 설명했다.

 

지금도 그런 애들이 태어납니다.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을 접하면 몸이 아픈 애들이요. 그 애들 중 하나가 민현이라고 했다. 태어났을 때는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는데, 사춘기 무렵 심하게 앓고 앓다가 결국 마을로 돌아왔다고. 부모는 아직 서울에 있는데, 애 하나만 덩그러니 여기 와서 살고. 딱하게 됐지요. 종부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얼굴을 했다. 젊은 애가 사람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그렇다곤 해도 사람이 목구멍에 거미줄 치라는 법은 없었는지, 민현은 동화 작가로 살고 있다고 했다. 좋은 이야기만 읽고 좋은 이야기만 풀어내는 삶. 그래서 그렇게 맹하고 멀건 얼굴을 하고 있었나 싶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달려간 덕에 성우는 종갓집에서 성대한 식사를 얻어먹었고, 또다시 떡을 두어 점 안겨 받았다. 성우는 건네받은 떡을 후식 삼아 뜯어 먹으면서 민현의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민현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자고 청할 것을 그랬다고,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방문을 두드리니 민현이 응답했다. 오셨어요?

 

“민현 씨는 식사 하셨어요?”

“네. 먹었어요.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나가시더라고요.”

“죄송해요. 떡 얻어 왔어요. 같이 먹어요. 이거.”

 

민현이 성우의 방 쪽으로 건너왔다. 두 사람은 작은 교자상을 펼쳐 얻어온 떡을 접시 위에 옮겨 담았다.

 

“몸은 괜찮으세요?”

“네. 그 정도 욕이야 한두 시간 정도면 좋아져요.”

“다행이네요.”

“근데 성우 씨.”

“네?”

“제 얘기가 궁금하신 거였으면, 그냥 저한테 여쭤보셔도 됐는데.”

“네? 아뇨! 저 민현 씨에 대해 전혀 안 궁금해했는데요?”

 

성우는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늘려 소리쳤다.

 

“아까 종부님께 전화 왔었거든요. 성우 씨한테 떡 보냈다고”

“아… 네…….”

“진짜 괜찮은데. 뭐 궁금하신 거 있어요?”


성우는 우물쭈물했다.


“그게요. 좀 그렇잖아요. 본인한테 여쭤보기가 좀.”

“뭐가 좀 그래요? 나쁜 말만 안 하시면 돼요. 저한테는.”

 

민현이 생글생글 웃었다. 성우는 속내를 들킨 것이 어쩐지 부끄러워, 말없이 하얀 떡을 몇 점 더 베어 물었다. 찰기 어린 떡이 혀 안에 들러붙는 감각이 삼삼했다. 민현과 마주 앉은 채 성우는 고민했다. 궁금하긴 했다. 언제부터 이런 종류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피곤하지는 않는지, 병원에 가서 이런 종류의 상담을 해본 적이 있는지. 개인적인 관심과 연구자로서의 학문적 호기심이 뒤섞였다. 성우는 민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무엇 하나 쉽게 던질 수 없는 질문이었다. 무례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흥미 본위의 질문 같기도 하고. 사실 민현의 말을 온전히 믿기도 어려웠다.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어쩌면 정신 질환에서 비롯한 문제일 지도 모른다고, 성우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성우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민현도 빤히 성우를 응시했다. 담백한 시선이었다.

 

민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우도 어쩐지. 닿아온 시선을 피하고 싶진 않았다. 도시의 잡음이 거세된 방에서는 멀리 매미 소리만 들려왔다. 바다에 막힌 마을이지만 사람이 터를 잡은 곳은 숲이었다. 숲의 냄새와 바다 냄새가 뒤섞인 마을에서는, 매미 소리와 파도 소리가 정적을 헤집고 비틀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정말로, 아프신 곳은 없고요? 성우는 대뜸 그 질문을 반복했다. 네, 정말 괜찮은데요. 민현이 단정하게 답했다. 그 말을 하면서 민현은 웃지 않았다. 조용히 눈길만 얽혔다. 모든 것이 낮게 가라앉았다. 마주치는 것들이 모두 어쩐지 부끄럽고 간질거려서. 성우는 괜스레 땀도 나지 않은 이마를 손으로 훔쳤다. 두 사람은 잠시 고요해졌다.

 

침묵이 무거워 성우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민현의 체질과는 상관없는 종류의 질문들이었다. 아주 통상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질 만한 질문을 거듭했다. 어, 민현 씨.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동갑이네요. 그런데 벌써 책도 내셨다고요. 와,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그 말에 민현이 제 방 안쪽을 가리켰다. 책을 보여주겠다는 의미였다. 민현의 방은 단출했다. 침구와 노트북, 낮은 책장 정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민현의 책장에는 아이들을 위한 얇은 동화가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저는 글만 쓰고 그림은 다른 분이 그려주시는데 책 예쁘죠. 서점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그림책이었다. 웃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알록달록한 꽃 무더기가 원색으로 선명했다. 예쁜 책이었다. 예쁜 사람과 닮은 어여쁜 책. 성우가 민현의 책을 들추었다. 책 속 내용은 온통 달고 다정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알맞게 사랑하고 강아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책. 책장을 넘기다 말고 성우는 문득, 궁금해졌다.

 

“사는 거 힘들지 않아요?”

 

툭 튀어나온 진심이었다.

 

“성우 씨는 힘들어요?”

“아니, 뭐, 힘들 땐 힘들기도 하고 좋을 땐 좋기도 하고.”

“저도 그래요.”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민현은 성우에게 책을 돌려받아 책장에 꽂았다. 마을의 아침은 일렀고, 발은 오후 네 시 무렵처럼 눅진했으나. 때는 여전히 한겻이었다.

 

 

 

*한겻: 한낮의 방언(평남)



-


초고는 다 쓴 글이니까, 늦지 않게 하 편을 올리겟습니다,,, 사투리는 아무렇게나 상상해주세요! 전문 지식 잘 모름 ㅠvㅠ 사랑이 더는 사랑이 아닌 순간에도 우리는 +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 기해년이라는 주제를 뒤섞어 생각했습니당!



워너원 덕질하는 해파리입니다

종이해파리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1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