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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황] 구원을 팝니다 上

2035년이 되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등장하지도, 수중도시가 탄생한 적도 없다. 삼권분립 하에 이뤄지는 민주주의 체제는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했고 사람들은 뜻 없이 살다 뜻 없이 죽었다. 이천삼십오 년이 되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말쯤 새로운 기술 하나가 개발되면서 세계는 급격한 변화에 휘말리게 된다. 다수의 행운을 채혈해, 작은 종류의 구원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원은 S/A/B/C급으로 나뉘었는데 C급의 구원은 오늘의 운세를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정도였다. 버스 환승이 타이밍 좋게 이어져서, 지각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행운. 그러나 고작 그 정도의 행운이라고 해도,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 기술이 어떤 경로로 발명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익명의 연구자는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불청객처럼 구원 기술을 발표한 뒤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누군가는 외계인의 소행이라고 떠들었고 누군가는 과학 기술의 혁명이라고 감탄했다. 메시아의 등장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종교계가 때를 놓치지 않고 들썩였다. 사이비 종교들이 앞다투어 구원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고, 교황을 필두로 한 기존 종교계 거물들이 나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신에 대한 모독을 용인할 수 없다고, 우리는 이 기술을 거부한다며 종교계 거물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들도 구원 사업에 결탁했다. 결탁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와 구원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기 때문이다.

 

종교뿐이 아니었다. 경제가, 사회가, 교육이, 복지가. 끝끝내 사회를 구성하는 갈래들은 모두 구원 사업과 결탁했다. 혼돈의 성질을 띠었다고 한들, 이미 발표된 기술을 사장시킬 수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신은 죽었다며 눈물 흘리던 자들이 가장 먼저 구원을 사들였다. 신사업의 등장과 함께 국가는 바빠졌고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났으며 청년들은 기뻐했다. 보이지 않는 행운을 파는 것이 피를 파는 것보다 좀 더 안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헌혈하는 마음으로 몇 단계 채혈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합법적으로 행운을 팔 수 있었다. 만 14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광고판의 네온사인이 번뜩였다.

 

허무주의자만이 인스턴트 구원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들은 늘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폄하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실존이 다급했던 청년들은 기쁘게 행운을 팔아치웠다. 행운에도 급이 있었다. 젊은것들의 행운이 노쇠한 자들의 행운보다 비싼 값에 거래됐다. 늙은것들보다는 젊은것들이, 젊은것들보다는 어린 것들이. 그해 말부터, 동네마다 유아사망률이 들쑥날쑥 지표를 바꾸었다. 구원 기술 개발 이후, 아이들이 특정 동네에서 유독 더 죽어 나갔다. 알음알음 루머처럼 번지던 소식을 학자 하나가 통계 분석 후 논문으로 발표했다.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조금 더 많이 죽기 시작했고, 부유한 동네의 아이들이 좀 더 잘 살아남기 시작했다는 결과였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이 죽음과 가까운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당연했던 일이다. 예상 가능한 연구 결과에 누구도 충격받지 않았다. 학자는 후속 연구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명실상부, 광기의 시대였다. 문제는 광기가 너무나 부드럽게 세상을 휩쓸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광기인 줄도 모르고 덤벙거렸다. 종종 광기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스물넷 황민현이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민현은 행운을 팔기보단, 노동력을 파는 것을 선호했다. 밥을 먹으려면 일을 해야지. 민현의 철학은 단순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내줘야지.

 

민현은 산뜻하게 웃으면서 과거의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을 답습했다. 일을 했고 밤에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 사범대에 재학 중이었던 민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자주 맡았다. 가난한 동네에서도, 부유한 동네에서도 공평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고, 찻길을 걷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은 공평하고 다정한 선생님을 사랑했다. 종종 누군가가 민현에게, 세상을 쉽게 사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정직하게 살아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민현은 고개를 저었다. 민현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민현은 머리가 작고 검은, 열아홉 동생과 함께 살았다. 민현은 그에게 존경받는 형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양심에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민현이 벌어들이는 수입 대부분은 동생을 위한 지출로 소비됐다. 학원비를 낸다거나, 좋은 것을 먹인다거나, 좋은 옷을 입힌다거나 하는 종류의. 민현이 끼니를 거르며 과외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민현과 친한 친구 하나가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민현아. 열아홉이나 먹은 남자애를 네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어.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친형제조차 아닌 사이였다.

 

배진영은 새어머니가 데려온 아이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새까만 눈동자가 인상 깊은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새어머니는 진영을 내버려 둔 채,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구원을 사고 싶어. 새로운 삶을 위해 결혼했던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든 부부들이 그러하듯 같은 이유로 불행해졌다. 낡아가던 새어머니는 자신의 구원으로 새로운 종교를 발견했고, 뉴스를 보다가 종종 입버릇처럼 말했다. 구원받고 싶어. 새어머니는 결국 어느 날, 존재를 지워버린 사람처럼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진영에 대해 아버지는 더없이 무뚝뚝해졌다. 새로 생긴 아들이 귀엽다는 듯 그렇게 끼고 돌았던 주제에. 민현은 완고하고 독선적인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민현의 어머니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무례했다. 민현의 아버지가 진영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서로 얼굴 볼 일 없었으면 하구나.

 

진영은 여유를 달라고 간청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이 집에서 곧바로 떠나겠다고. 아버지는 완고했다. 민현은 아버지가 특별히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완벽한 가정을 꿈꾸었던 아버지는 끝끝내 자신의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실패는 감당하기 어려운 법이고, 실패 앞에서 사람은 모질어진다.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무언가를 보기만 해도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진영은 제 어머니를 닮아 눈이 깊었고, 머리통이 작고 단단했다. 거칠어진 마음들이 모두를 날뛰게 만들었다. 그러니 민현만이 그 거실에서 가장 평온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민현은 새어머니를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었다. 친아버지를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진영은 버림받은 아이처럼 손을 벌벌 떨었지만,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모든 감정을 짓이겨 삼켰다. 손을 떠는 진영을 바라보며 민현은 두 사람 사이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새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어오던 어린 배진영. 그때도 진영은 손을 떨고 있었다. 새 가족 구성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따위 하나도 없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민현은 알았다. 진영은 긴장하고 있었다. 형이라고 불러 줘, 진영아. 민현이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긴장으로 굳어있던 눈이 금세 다정해졌다. 민현은 진영의 눈동자가 맑고 검다고 생각했다. 진영은 여전히 손을 떨고 있었다. 민현은 생각했다. 두 번의 버려짐은 아이에게 조금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교육은 믿음, 믿음은 구원. 아이들에게는 믿음이 꼭 필요하답니다. 그렇게 말하던 교수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민현은 진영을 조금 믿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진영의 머리통이 너무 작아서. 누군가 쓰다듬어주지 않으면 그 작고 검은 머리통은 지구에서 소멸할 것처럼 작아 보여서. 민현이 진영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진영이 깜짝 놀란 듯 형의 존재를 인식했다. 아버지. 민현이 입을 열었다. 단정한 목소리였다.

 

제가 데려갈게요, 진영이.

 

어떤 선택은 선명하고 명확하게 깊이를 남긴다. 마치 도마 위 칼자국처럼. 황민현에게 배진영은 깊이로 남았다. 민현은 지금도 진영을 데리고 나온 자신의 선택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얀 쌀밥을 씹어 삼키는 감각으로. 도마 위에서 생선 머리를 내려치는 감각으로. 민현은 자신의 선택지를 받아들인다. 다시금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민현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은, 명확한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그 까만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부터 아마도 민현은.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고.

그 가엽고 어린 존재에게.

 

 

 

/

 

 

 

두 사람이 독립하던 때 민현은 스물셋이었고, 진영은 열여덟이었다. 민현은 검은 개를 기르는 마음으로 진영을 먹여 길렀다.

 

사람을 기르는 건 짐승을 기르는 일보다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민현은 곧바로 궁핍해졌다. 민현의 아버지는 초기 독립 자금을 도와주었지만 생활비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민현은 아버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아버지는 완벽주의자였다. 실패한 가정에서 태어난 두 아들에게는 정을 주고 싶지 않다는. 명확한 의사 표명이었다. 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활비와 학비는 알아서 할게요. 황민현은 자신 있었다. 불안해하는 쪽은 진영이었다. 괜찮을까, 형. 그래도 진영은 형에게서 떨어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형이랑 같이 살고 싶어, 같이 살게 해줘. 그 점이 좋았다. 민현을 생각하는 체하면서도 결국은 제 안위부터 앞세우는, 불완전하고 다정하고 이율배반적인 배진영이 좋았다. 민현은 진영을 등 뒤에서 안아주면서 너르게 답했다.

 

괜찮을 거야.

응.

좀 힘들긴 하겠지만.

 

진영이는 잘 버텨낼 거야, 그렇지? 그 말에 배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은 힘든 것을 잘 견디는 타입이었고, 민현도 불평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그럴듯하게 생활을 이어나갔다. 진영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민현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늘렸다. 형제인가 봐요. 잘생겼네. 이웃들이 두 사람을 칭찬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쓰레기 수거일을 어긴 적이 없었고, 이웃에게도 늘 친절히 인사했다. 두 사람은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살았기 때문인지 더없이 닮아갔다. 


형, 나 옷 좀 빌려줘. 


옷장 속을 공유하고 먹을 것을 공유하고 숨소리를 공유하면서 일 년 사이 배진영과 황민현은 더욱더 유사해졌다. 진영은 빠르게 민현의 인생 사이로 스며들었다. 민현에게는 그 점이 더없는 위로였다. 배진영이 황민현을 좋아한다는 점, 동경한다는 점, 존경한다는 점, 민현이 가진 당연한 것들을 멋지다고 평가해준다는 점. 그 모든 것이 민현의 위로였다. 진영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 친구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끼고돌기 위해서, 단단해지는 생도 있다는 것을. 민현 역시 진영과 함께 살기 전까지는 그런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민현은 피를 팔지 않았다. 행운을 팔지도 않았다. 행운을 파는 생은 위험해 보였고, 민현은 진영에게 그런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았다. 진영은 늘 민현에게 감탄했다. 형은 어떻게 이런 걸 할 수 있어? 형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민현은 진영 앞에서 매일 재탄생됐다. 진영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민현을 칭찬하고 치하했다. 형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좋아. 형의 성실함이 좋아. 형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아. 황민현은 다소 오만해졌다. 어쩌면 자신이 진영의 생존과 본질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민현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공부하던 책을 덮고 달려와 민현의 목도리를 풀어주고 정리해주는 배진영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누구를 만났느냐며 오늘 하루가 좋은 하루였냐고 묻는 진영에게 응답해주며. 애정을 숨기지 못하고 만면에 미소를 띤 진영에게 익숙해지며. 민현은 조금 오만한 방식으로 자아도취에 빠졌다. 그래서 민현은 몰랐던 것이다. 진영의 목소리가 짙어지고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스물셋에서 스물다섯이 되어가듯이, 열여덟이 스물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진영이 민현을 해석하는 방식이 단순히 재잘거리는 동경에서, 조금씩 다른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도. 열감이 붙기 시작했다는 것도. 민현은 눈치채지 못했다.

 

형은 어쩌면 이렇게

 

진영은 한결같이 다정했지만.

 

아름다워

멋있어

사랑스러워

대단해

좋아


형이,

좋아

 

온갖 미사여구가 과장되기 시작했을 때

알았어야 했는데.

 

민현 역시 같은 지적을 제삼자에게 받았다. 민현이 친구에게 업혀 들어온 날이었다. 과외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간만에 친구와 술을 마신 민현이었다. 민현은 진영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맥주 캔을 따던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너 대체 언제까지, 그 형제 놀이에 심취할 건데. 민현은 웃으며 그 말에 수긍했다. 맞아. 내가 과보호긴 해. 친구는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지금 나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 내가 걱정되는 건 진영이인가 뭔가 하는 걔가 아니야, 오히려 네 쪽이라고.

 

“내가 왜.”

“나도 형제가 있어서 아는데.”

 

너희 둘이 하는 건 형제다운 방식이 아니야. 가족도 아니고. 뭔가 좀 이상하다고. 친구는 한숨을 쉬었고 민현은 어쩐지 몹시 불쾌해졌다. 민현은 누군가에게 추궁당할 만한 인생을 산 적이 없었다. 늘 바르게 정도(正道)를 걸어왔다. 진영을 만나고 거둔 것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떳떳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일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민현은 친구의 걱정이 불쾌했기에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고 답지 않은 방식으로 취해 버둥거렸다. 네가 뭘 아는데. 민현은 친구에게 항변했고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민현을 붙들고 민현의 집까지 함께 걸었을 뿐이다.

 

친구는 술에 취해 버둥거리는 민현을 진영에게 인도했다. 진영은 민현을 데려다준 형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후, 민현을 얼러 소파에 앉혔다. 네가 뭘 알아. 민현은 진영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네가 뭘 아냐고. 진영은 가만히 민현을 바라보았다.

 

“취했어, 민현이 형?”

 

민현이 딸꾹질을 했다.

 

“응, 취했다. 형 취했어. 진영아.”

“웃겨. 귀여워.”

 

진영이 웃었다.

 

“배진영 많이 컸네. 형을 귀여워하고.”

“응. 나 많이 컸어. 형.”


처음에는 까마득히 높아 보이던 형이었는데. 아, 물론 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진영은 민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저 작게만 느껴졌던 동그란 뒤통수가 제법 묵직해져 있었다. 뺨을 비벼오는 진영을 자연스레 안으며 민현은 문득 친구의 목소리를 회상했다. 가족도 형제도 아니고. 뭔가 좀 이상하다고. 진영은 거실 불을 켜지 않은 채 민현을 소파에 앉혔다. 방은 어두웠으나 눈은 곧 어둠에 익숙해졌다. 진영의 형체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 민현은 가만히 손을 뻗어 진영의 머리통을 쓰다듬어보았다. 익숙하게 휘어지는 동그란 감촉이 익숙하고 편안했다. 있잖아, 형. 진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한테 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형도 이미 알 것 같지만.

응?

나, 형 좋아해.

…응.

안 받아줄 거지?

응.

동생 노릇이나 계속 하라고 할 거지?

…….

그래도 괜찮아 형.


나는 황민현이 너무 좋으니까. 진영은 민현의 답변을 예상했다는 듯, 민현의 품 안에 안겨 왔다.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왜냐하면 나 이제 곧 스물이거든. 스물이 되면, 형도 거짓말은 못 할 테니까. 민현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진영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진영이 민현에게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가족애가 아니었다.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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