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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황] 타인의 연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면, 늘 민현이 형부터 떠오른다. 민현이 형을 좋아하게 된 건 오후 네 시 무렵이다. 오후 네 시마다 형은 우리 집에 왔다. 형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의 과외 선생님이자, 선생님을 빙자한 배 남매의 보모였다. 맞벌이로 바빴던 엄마는 형에게 몇 푼의 돈을 더 쥐여주면서 저녁 식사를 함께해달라고 말했다. 고등학생이나 되었는데 내가 가스 불을 키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였다. 엄마에게는 늘 뉴스가 문제였다. 뉴스 속 세상은 지나치게 소란스러웠고, 걱정 많은 엄마는 우리 남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숨부터 내쉬었다. 조심해야지.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땐 내 가슴도 함께 뛰었다.

 

형은 요리를 잘할 것 같았지만 요리에는 젬병이었다. 우리는 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가끔 형이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말했고, 형이 끓여준 라면은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았다. 퉁퉁 분 라면 면발을 씹어 삼키며 참치 김밥을 하나 더 주문했다. 가끔은 내 용돈으로 치킨을 시켜서 생색을 냈다. 형이 맛있다고 웃었고 여동생도 좋아했다. 오후 네 시, 여동생의 수업은 한 시간 안팎으로 마무리됐다. 그 이후론 자유 시간이었다. 나는 형에게 기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형은 과학을 전공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종종 별자리와 별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들이야. 형은 종종 낭만적인 이야기를 했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보물처럼 주워 먹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아주 많았지만 민현이 형은 조금 달랐다. 라면을 좋아하는 것과 치킨을 좋아하는 것과 황민현을 좋아하는 것은 아주 다른 감정이었다. 낯가리던 시기가 지나자 형과는 금세 친해졌다. 형은 명백한 사람이었다. 나를 좋아한다는 신호를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형과 있을 때 나는 금세 편해졌다. 형은 가끔 이상한 장난을 쳤다. 어쩌면 장난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고급 털실을 가져와서 실뜨기를 하자며 졸랐다. 문방구에서 파는 공기놀이 세트도 가져왔다. 아주 가끔은 윷놀이까지 했다. 이천십팔 년의 고등학생에게 어울리지 않은 놀이들이었다. 기가 찼지만 황민현이 종알거렸기 때문에 공기 놀이도 해주고, 실뜨기도 해주었다. 아마 지식인에서 괴상한 이야기를 듣고 온 게 분명했다. 요즘 애들과 놀아주려면 공기놀이라도 해야 한다는. 구십년대 정보라도 읽고 온 모양이었다.

 

형은 마음껏 나를 애 취급했다. 그 점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형은 초등학생 여동생을 갓난쟁이처럼 취급했다. 가스불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심지어 냉장고 문도 못 열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남자애인 나는 초등학생 취급을 당했다. 형은 말이야. 형의 문장 첫 머리는 늘 ‘형’으로 시작했다. 나는 황민현이 형인 것을 알고 있었고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형’을 강조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특별히 여동생에게 ‘오빠가’라는 호칭을 붙여본 적이 없었다. ‘형은 형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아요?’ 대뜸 물어보자 황민현이 부끄럽다는 듯 답했다. 아, 그게 아마. 나는 동생이 없어서.

 

동생이 생긴 기분이라 그런가 봐.

 

부끄러울 고백도 아니었는데 형의 귓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붉어진 귓가에 괜히 내 얼굴도 홧홧해졌다. 손부채질을 하면서 알겠다고 말했다. 동생이 생긴 기분이라면, 더 귀여워하라고 장난처럼 닦달했다. 형이 알겠다며 새끼손가락을 걸어왔다. 지구 걸고 약속할게. 계속 좋아할 테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맹한 소리였지만 좋았다. 엄마가 주는 애정과 여동생이 달라붙는 애정과는 명백하게 결이 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아주 많았다. 그것들에 대해 설명하려면 한 페이지도 넘게 다른 단어를 적어 내릴 수 있었지만. 민현이 형에 대한 감정만은 색이 달랐다. '치킨이 좋다', '짜장면이 좋다', '공기놀이가 좋다'와는 전혀 다른 감각. 그 감각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 때쯤 형에게 애인이 생겼다.




/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애인이 생길 수 있는 나이였고 애인이 생길 만한 얼굴이었다. 모태 솔로였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 동생과 용돈을 나눠 홀 케이크를 샀다. 우리는 홀 케이크에 몇 개의 촛불을 끼워 황민현의 첫 연애를 함께 축하했다. 민현이 형은 연애를 시작한 뒤 조금 바빠졌다. 우리 남매는 그의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래도 서운하진 않았다. 연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친구들도 늘 그랬으니까. 연애가 시작되면 친구 사이는 조금 멀어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황민현과 친구 사이는 아니었다. 친구 사이가 아닌 사람도 애인이 생기면 멀어진 척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여동생이 민현이 오빠가 보고 싶다고 칭얼거렸고 나도 답했다. 나도 보고 싶어. 민현이 형.

 

그래도 참아야지.

 

우리는 어른스러운 표정을 흉내 냈고 여동생도 납득했다. 바쁜 부모님 아래서 자라다 보면 외로움을 잊어버리는 방법이 수월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와 생각하면, 조금은 불평하는 것이 좋았을까. 형은 당연하다는 듯 우리에게 소홀해졌다. 오후 네 시에 칼같이 집에 들르던 민현이 형. 지각이 잦아졌고, 주 5회 일정이 주 3회에서 주 2회로 줄어들었다. 형의 나태는 우리를 슬프게 만들었다. 쓸쓸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쓸쓸해질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형, 요즘 많이 바빠요? 황민현이 그 말에 금세 미안하다는 얼굴을 했다. 미안해, 진영아. 형이 요즘 과제도 많고 정신도 없어서. 거짓말. 하지만 형을 몰아세우진 않았다. 형이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일들을 긁어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망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터벅터벅 걸었다. 가로등이 비추는 구월의 밤거리도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 쓸쓸해진 뒷골목도 성실하게 걸었다. 왼발에서 오른발로 이어지는 걸음을 성실하게 반복하면 슬픔도 기쁨도 익숙해질 것처럼 느껴졌다. 목적지만은 언제나 명확했다. 우리 집 현관문에 도착하기.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랬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왼발에서 오른발로, 오른발에서 왼발로 걸음을 옮기며 걸었다. 평소와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걸음마다 황민현을 생각했다. 보고 싶다. 부러 목적어를 붙이지 않고 조용히 속살거렸다. 가로등 불 밑에서는 가만히 두 손을 맞붙여보기도 했다. 쪼끄만한 기도였다. 우연히 이 거리에서 형을 만나면 좋겠다. 형이 나를 알아보고 손짓해주면 좋겠다. 밤하늘로 시선을 돌리자 가로등 불빛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별을 바라보며 자꾸만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형은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이 차고 맑았다.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 기도가 이뤄진 것은 뜻밖의 장소에서였다. 황민현이 우리 집 앞에서 나를 반겼다. 술에 취한 민현이 형은 마구 구겨진 채 우리 집 앞에 잠들어 있었다. 이 형이 왜 여기에 있나 당황스러웠다. 얼굴을 매만지니 뺨이 차가웠다. 형은 아직 반팔 차림이었다. 교복 마이를 벗어 형의 등을 덮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진영이네. 민현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형이 실실 웃었다. 네, 형. 여기에서 뭐 하는 거예요? 저 지금 좀 어이없거든요. 맨날 지각만 하더니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오면 어떻게 해요? 형에게 부루퉁하게 툴툴거리자 형이 웃으며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어서 왔지. 우리 진영이.

 

그 말에 숨이 막혔다. 나는 형이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형은 제가 가진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내게 애정을 쏟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나에게 애정을 되돌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애정은 종종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나는 황민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황민현은 내게 그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성급했다. 황민현이 쏟아낸 애정들을 소화하기 위해 나는 침묵했다. 나도 형에게 무언가를 건네주고 싶었으나 형은 재빨리 내 마음을 거절했다. 생일선물을 굳이 챙겨주겠다고 말했던 팔월도 마찬가지였다. 형이 진영이한테 그런 거 받으면 안 돼. 친형도 아닌 주제에 퍽이나 다정스런 말투였다. 그날로 돼지저금통부터 박살 냈다. 가진 돈을 끌어모아 백화점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넥타이를 선물했다. 민현이 형이 기쁘다면서, 첫 면접 자리에 꼭 매고 가겠다며 내 취향을 칭찬했다. 넥타이의 색은 붉고 붉은 진홍색이었다.

 

술에 취한 형을 주방까지 끌고 왔다. 테이블에 형을 앉히자 더운 열감이 훅 몰려왔다. 형이 물을 한 잔만 달라고 말했고 냉장고를 열어 물컵을 건네주었다. 물을 마신 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깨가 떨려온다 싶었더니 황민현이 울고 있었다. 여동생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엉엉 우는 황민현을 바라보면 여동생은 같이 울어 젖혔을 테니까. 나는 퍽 당황했지만 최선을 다해 모른 척을 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엄마가 넣어주었던 손수건이다) 형에게 건네자 형이 눈물을 닦았다. 고마워, 진영아. 그리고 미안해, 진영아. 미안할 짓은 안 하는 게 맞는다는 지적은 잠시 숨겨두었다. 형은 나에게, 미안할 짓을 두어 번 더 해도 되는 존재였다.

 

형, 힘들어요?

하하. 그런가.

 

조금 울고 나니 형이 후련하다는 표정을 했다. 연애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연인에게 차였거나. 어쨌거나 연애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우주를 이야기하는 황민현은 늘 평온했다. 네 시의 황민현이 과제 때문에 쩔쩔맨 적 또한 없었다. 울고 있는 민현이 형에게 다가가 그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슥 닦아보았다. 형이 당황했으나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용기를 냈다. 훔친 눈물을 혀로 핥아보았다. 생각보다 별로 안 짜네요. 덤덤하게 답했더니 당황한 쪽은 형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냥 조금 웃고 말았다.

 

물어봐 드려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형의 연애사를 다 물어봐 드릴까요. 그러면 형 기분이 좀 좋아질 것 같아요? 내가 대놓고 질문했더니 형의 귓가가 홧홧하게 붉어졌다. 나는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형의 연애담이 궁금하기도 했고 동시에 형의 연애담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오후 네 시의 황민현과 새벽 두 시의 황민현을 구분하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새벽 두 시의 황민현은, 그 사람에게 주고 잊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축하 파티를 하는 날, 민현이 형이 촛불을 끄던 그 저녁에 결심했다. 다만 오후 네 시의 황민현은 오롯이 우리 남매의 것이었다. 계약서가 소유권을 증명했고, 몇 푼 되지 않는 돈이 그의 발목을 얽었다. 그러니 새벽 두 시의 황민현이 누구와 어떤 연애 계약서를 맺었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이야기를 했든 내 것은 아닐 이야기였다. 내 것이 아니어야 할 이야기였다.

 

왜 울었어요?

…그냥 좀 힘들어서.

애인이 힘들게 해요?

 

그런 건 아닌데. 형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나도 연애를 해본 적은 없었으나 형의 연애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유추해볼 만했다. 그냥 얘기해요. 어차피 저는 형 애인이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입을 열자, 민현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입을 열 때마다 엷게 술 냄새가 풍겼다. 그건 오후 네 시의 황민현이 아니었다. 새벽 두 시의 황민현이 자발적으로 내 앞에, 미끼를 들고 등장한 것처럼도 보였다. 형이 더듬더듬 넋두리를 풀어냈다. 그냥 걔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늘 바쁜 것 같고. 근데 사실 나도 바빠. 그래서 늘 엇갈리는 것 같고. 형의 목소리가 애잔했다. 그렇구나. 형은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도 형을 좋아하는데 늘 엇갈리기만 한다는 뜻이죠. 정리된 답변에 민현이 형이 나를 칭찬했다. 맞아. 진영이는 늘 정리를 잘해. 진영이도 연애해 봤어?

 

해본 적 없는데요.

그럼 앞으로 잘하겠다.

 

나보다 더 잘할 것 같아.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어딘가 허탈한 것 같기도 했고, 어딘가 포기한 듯도 한 목소리였다. 이 연애가 깨질 일은 없겠다 생각했다. 황민현은 그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듯 보였고, 새벽 두 시의 민현이 형은 여전히 그 사람의 소유였다. 내가 굳이 그 관계망에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오후 네 시의 이야기라면 달랐다. 시계를 살폈다. 오후 열한 시였다. 오후 열한 시는 오후 네 시에 가까울까 새벽 두  시에 가까울까. 어딜 봐도 후자인 계산이었지만 오늘의 오후 열한 시는 네 시에 가까운 것으로 결정했다. 동생이 자주 찾는 초코 우유를 하나 꺼내 민현이 형에게 건넸다. 드세요. 단 거 먹음 술이 깬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자주 보던 아홉 시 뉴스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형은 초코 우유를 마셨고 부끄러운 꼴을 보였다며 미안해했다. 나는 그때 조금 진심으로 웃었다. 밝게 웃으면서 아니라고. 형도 내가 힘들 때 위로해주면 되지 않느냐면서, 형의 가장 가까운 동생처럼 응석 부려보았다. 그러자 형의 얼굴도 금세 밝아졌다. 진영아, 고마워. 나는 정말 너희가 친동생 같아. 그 말에 문득 가슴이 뛰었다. 친동생이라. 나는 황민현이 언제나 좋았으나 친형 같지는 않았다. 친형이 있다고 해도, 황민현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제가 없다는 황민현은 남매 관계나 형제 관계를 완벽하게 오독한 것이 틀림없었다. 형, 그건 동생에 대한 애정이 아닌데요. 말해주고 싶었으나 말한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황민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현이 형이 빨대를 빨아 초코 우유를 모두 삼켜냈다. 형이 고맙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술을 마시고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은 자신의 실수라며 사과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냥 자고 가라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동생은 수련회를 갔고, 바쁜 부모님은 출장 중이었다. 내가 썩 외로우니 곁에 있어 달라고 형의 손목을 쥐었다. 그 말에 황민현이 기다렸다는 듯 ‘그럴까’라고 답했다.

 

우리는 같은 침대에 누웠다. 몸을 씻고 양치도 했지만 형에게선 여전히 술냄새가 풍겨왔다. 너무 좋아하는 형을 쓰다듬어주면서 나는 형이 사귀는 사람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아마도 여자겠지. 설마 남자일까. 그 사람은 황민현에 대해 무엇을 알까. 내가 아는 것보다 형에 대해 잘 알까. 편하게 잠든 형의 얼굴을 그 사람은 몇 번이나 훑어봤을까. 그 사람은 이미 형과 잤을까. 형은 섹스할 때 무슨 소리를 낼까. 형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뺨을 만지작거리자 형이 ‘하지 마, 간지러워’라며 조용히 웃었다. 새벽 두 시의 그 사람이 부러울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다 포기하고 갈음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잠든 형의 곁에서는 모든 게 간지러웠다. 두드러기가 돋아난 것 같았다. 새우를 먹은 것도 아닌데 꼭 그런 기분이었다. 팔꿈치 안쪽 여린 살을 벅벅 긁어봤지만 간지러움이 해소되진 않았다. 알레르기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 갔던 그때처럼, 입안이 푸둥푸둥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형이 몸을 떨 때마다 속눈썹이 바르르 움직였다. 형의 속눈썹은 파리 날개처럼 유려했다. 누군가가 이 속눈썹 위에 자연스레 입을 맞추겠지. 부럽다. 죽도록 부럽다.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모든 게 명확해졌다.

 

질투였다.

새벽 두 시의 그 사람에게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종결된 단어로 감정을 정리하자 모든 게 깨끗해졌다. 그런데도 계속 몸이 간지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내 팔꿈치 안쪽과 목 부근을 벅벅 긁었다. 벌건 생채기가 났지만 손톱질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형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형. 좋아해요. 내가 입을 열자 형이 습관처럼 내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나도 좋아해. 진영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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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질투의 바닷속을 헤엄칠 때, 오후 네 시의 황민현도 변해가고 있었다. 


엄마와 형이 몇 번이고 전화 통화를 반복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오후 네 시의 황민현은 결국 과외를 그만둔다고 말했다. 주 2회 방문마저 어렵다고 뻐걱거리더니 결국 그짝이었다. 앞으로는 여기 오기 어려울 것 같아. 형이 부드럽게 우리를 거절했다. 형은 나쁜 소리를 한 적이 없었지만 늘 나에게 모질었다. 다음 주부터는 오기 어려울 것 같아. 앞으로 건강하게 지내야 해. 다정한 목소리로 세상에서 제일 엿 같은 소리를 했다. 나는 멍하니 형을 바라보았고 여동생이 먼저 민현이 형을 붙들었다. 선생님, 그만두지 말아요. 여동생이 울었고 민현이 형이 동생을 품고 다정하게 달랬다. 종종 놀러 올게. 선하고 다정한 거짓말이었다. 여동생은 알겠다고 훌쩍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오후 네 시의 황민현은 계약서를 구겨 던져버렸고 두 번 다시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르쳤던 애들 중 그런 남매가 있었지. 성씨가 특이했어. 배 씨라고 했나.’ 따위의 다정함으로 우리 남매를 갈음해버리고, 오후 두 시의 관계망과 오후 네 시의 관계망을 새롭게 이어가겠지. 뻔한 이야기였다.

 

울던 여동생을 달래 낮잠을 재웠다. 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더니 형도 그러자고 했다. 왜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느냐 물었더니 이제는 취업 준비를 시작할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연애도 하면서 과외도 할 수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황민현이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어딜 봐도 명백한 거절이었다. 그 사람하고는 잘 지내고 있어요? 할 말이 궁색해져서 괜히 형의 연애사를 끌어왔다. 나는 아직 울고 있던 황민현을 잊지 못했다. 차라리 형이 많이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연애 따위 하는 게 아니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민현이 형은 내 기대와 다르게 멀쩡한 얼굴이었다. 응,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어렵긴 하지만.

 

아직 쉽진 않아.

 

어려워. 어려워.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황민현은 종종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린애 같은 제 안의 자아를 툭툭 던져냈다. 또다시 몸이 간질거렸다. 어떻게 살펴도 형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차라리 여동생이라면, 여동생과 흡사한 나의 민현이 형. 툭툭 터져오르는 형의 어린애 같은 면모들을 헤아려주고 싶었다. 나라면 다 안아주고 달래주었을 텐데. 오빠로 살아온 경력만 열아홉이었다. 불쑥거리며 튀어나오는 마음에 목 끝이 간질거렸다. 남동생도 아닌, 여동생 같은 형이었다. 연애가 어렵다는 형을 꽉 끌어안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민현이 형이 의아한 얼굴을 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침묵하는 편을 택했다. 

 

너무 힘들게 하면 말해요.

 

그러면 내가 때려주러 갈 테니까. 고르고 골라 내뱉은 문장이 그런 소리였다. 그 말을 듣고 황민현이 무척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좀 부끄러워져서 발끝을 서성였다. 진짜예요, 형. 제가 때려주러 갈 테니까 형은 말만 해요. 내 전화번호 지우지 말고요. 민현이 형이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진영아. 폭력은 안 돼. 지나치게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에 나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알았어. 나는 진짜,

 

진영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민현이 형이 너무 심하게 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정말 곤궁해졌다. 마른 잎처럼 건조해진 입가를 잘근거리면서 오후 네 시가 영원히 이어지길 바랐다. 눈치라곤 개나 줘버린 민현이 형이 시계를 보고 답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네. 이제 진영이도 들어가. 나도 들어가 볼 테니까. 황민현이 챙겨온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가디건을 입었지만 제법 쌀쌀한 가을 저녁이었다. 이대로 내 인생에서 로그아웃하려는 형을 붙들고 싶어 마음이 절박해졌다. 그런데요, 형. 생각보다 먼저 입이 열렸다. 하얀 손목부터 쥐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조금 더 일찍 이야기할 것을.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고 건조한 살갗의 느낌에 가슴이 간지러웠다. 너무나 쉽게, 아무 죄책감 없이 배진영을 과거로 남길 황민현. 그럴 민현이 형에게 저항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저도 세상에서 제일 형을 좋아해요.

 

'나도'라고 말하려는 황민현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런 거 말고. 그 사람처럼요. 그 사람이 형을 좋아하는 것처럼 저도 형을 좋아한다고요. 나는 부러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시선을 마주하고 고백을 쏟아내면 황민현이 웃어버릴 것 같았다. 바람이 불었고 가슴 속으로 열을 셌다. 십, 구, 팔… 삼. 십이 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황민현은 답이 없었다. 고백을 고백으로 알아들은 눈치였다. 당황한 얼굴일까. 사색일까. 황민현이 내 고백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민현이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민현은 웃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당황한 기색도 아니었다. 더없이 진지한 황민현의 얼굴은 내가 평소 봐오던 오후 네 시의 민현이 형과는 전혀 달랐다. 낯선 형의 옆모습에 나도 고요해졌다. 정적이 이어졌다.

 

그렇구나.

…네.

나 사귀는 사람 있어.

알아요.

 

황민현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사귀는 사람

 

굉장히 좋은 사람이야 진영아. 황민현이 그렇게 설명했고 나는 이제 내가 울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잡힌 손목이 느슨하게 빠져나왔다. 진영아, 고마워. 황민현은 ‘너를 동생으로 좋아한다’든가 ‘형보다 좋은 사람 만나야지’ 따위의 말로 이 상황을 마무리하진 않았다. 그저 경건하고 다정하게, 모든 상황을 종결했다. ‘고마워’라고 답하는 형의 옆모습을 종종 상상해보았으나 이렇게 빠르게 찾아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형은 행복할 거거든. 진영이도 최선을 다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황민현다운 위로였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면, 늘 황민현에 대한 단어부터 떠올랐다. 그건 치킨을 좋아한다거나 수학을 좋아한다거나 스키를 좋아한다는 감각과는 전혀 달랐다. 깊고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나 종종 바람 부는 창가처럼 덜컥거리고 비바람이 불었다. 나는 창가에 얼굴을 붙이고 오후 네 시의 형을 기다렸다. 함께였던 시간 동안 우리는 갓 구운 빵처럼 따끈하고 아름다웠다. 평온은 쉬이 무너졌다. 오후 네 시의 형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아홉 시 뉴스 속으로 훌쩍 건너간 뒤, 바쁜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를 잊어가겠지. 오후 세 시의 황민현도 오후 네 시의 황민현도 모두 사라지겠지. 나는 조금 울고 싶어졌지만 울지 않았다. 오기였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민현이 형이 연락하겠다고 말하면서 이제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형.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주기라도 해요. 황민현이 그 말을 들고 내 등을 쓸어주었다. 수십 번쯤 안긴 포옹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는 것처럼, 형의 손은 달뜨고 열감이 가득했다. 내 뼈라도 부러뜨릴 것처럼 세찬 포옹이었다. 나를 안아준 뒤 형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 안녕. 잘 지내. 수능 보면 연락하고. 밥 사줄게. 나도 대답했다. 네. 형. 저 형만큼 좋은 대학 갈 거예요.

 

뻔한 이별 인사였다.

그날로 나는 형의 연락처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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