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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년] Lay your hands on me

리얼물

생애 첫 라이브 방송이었다. 무대는 생각보다 넓었고 관객 수도 어마어마했다. 가슴이 뛰는 동시에 불안했다. 눈앞으로 최종 순위발표식 무대를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인터뷰 영상을 따는지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소리가 사그라지면 무대 뒤 정적이 더없이 고요해졌다. 누군가 힘을 내자고 소리쳤다. 성운이 형이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진 않았다. 파이널 무대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불안감이었다. 데뷔 확정권이라 평가받는 다니엘과 지훈이마저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지훈이는 자꾸만 손톱 거스러미를 뜯어냈다. 괜찮냐고 묻자 박지훈이 웃었다.

 

“괜찮아야죠. 형. 어쩌겠어요.”

 

지훈이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괜찮아야 했다. 괜찮지 않더라도 수없이 괜찮아져야 했다. 몇 차례의 평가 무대와 무대별로 따라붙는 악플을 씹어 삼키다 보면 주제 파악을 하게 된다. 우리는 괜찮아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연습생 이름을 호명했다. 누군가는 브라운, 누군가는 버건디. 코끝을 간질이는 분가루를 삼켜내며, 스무 살 무렵의 불안했던 옹성우를 떠올렸다. 지금의 나와 그 시절의 옹성우 중 누가 더 많이 불안해하고 있을까. 답은 뻔했다. 그러니 이 감각조차 사치스러웠다. 무대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은 그 시절의 옹성우가 아니었다. 핸즈온미 무대 준비해주세요. 아이돌로서의 옹성우가 필요했다. 준비 사인에 진영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리허설 때만큼만 해주시면 돼요. 이젠 익숙하시죠? 조연출 선생님이 웃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하긴 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핸즈온미 무대 위에서 우리는 최대한 능숙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표정을 지어보려고 노력했다. 부러 얼굴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이우에오를 외치는 내 모습에 진영이가 엷게 웃었다. 야. 웃지만 말고 너도 해. 아이우에오. 섹시한 배진영 보여주고 와. 할 수 있지? 진영이는 센터였다. 그에게는 방송 내 첫 번째이자 마지막일 센터 도전. 그럼요, 형. 진영이가 덤덤하게 답했다. 단단해진 진영이의 옆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첫 만남에선 시선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배진영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친해진 스태프 하나가 곁으로 다가왔다. 성우 씨 때문에 방송이 늘 유쾌했는데. 마지막까지 파이팅. 잘하실 거예요.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문득 마음이 덜컥거렸다. 지구상에서 공기가 사그라든 것 같은 감각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진영이보다 불안해해서야 안 될 일이었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황민현이었다. 성우야.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사실 민현이의 응원이 별 힘이 되진 않았다. 응원을 입에 올리는 황민현조차 얼굴이 파리하게 굳어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 때문에 화장한 입술만이 시뻘겋게 튀었다. 그 입술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야. 황민현.”

“응?”

“뭘 불안해 해? 아마추어야?”

 

황민현이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꼭 같이 데뷔하자.”

 

너랑 같이 데뷔하고 싶어. 굳어있던 황민현의 손을 움켜쥐었다. 옹성우는 황민현이랑 같이 데뷔하고 싶다! 너도 말해 봐. 나랑 같이 데뷔하고 싶다고. 황민현이 조심스럽게 내 말을 따라 읽었다. 성우랑 같이 데뷔하고 싶다? 우리는 그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황민현의 손은 땀으로 축축했지만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굳은 손가락을 쥐어짜듯 꾹꾹 눌러주었다. 나는, 황민현이랑 데뷔하고 싶다. 왜냐하면 황민현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좋기 때문이다! 지훈이와 다니엘이 그 말을 듣고 깔깔거렸다.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하얗게 켜졌다. 열여덟의 스무 살의 스물셋의 옹성우를 잊을 시간이었다. 자신감을 얻고 싶어서 손을 든다고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매 순간이 불투명했고 역겨웠다. 그러나 동시에 한없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전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 누군가의 데뷔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운 동시에 짜릿했다. 그 표 중 일부는 마땅히 내 것이어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하얀 스포트라이트가 우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강렬했다. 모든 감정이 뒤섞여 구역질하고 싶은 기분을 억눌렀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 민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잘할 수 있을까?’라든가 ‘잘해보자’ 따위의 말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황민현 역시 나를 잠시 바라본 뒤 제 동선을 찾아 몸을 움직였다. 민현이의 표정도 맑게 가라앉아 있었다. 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최종 순위발표식이 마지막 무대가 된다 해도, 스포트라이트 머금은 황민현의 옆모습만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떨어질 생각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첫 음이 들렸다. 

무대의 시작이었다.

 

 

 

/

 

 

 

“우리 같이 데뷔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함께 데뷔했다. 연습생에서 아이돌로 이름표가 바뀌는 순간, 엄지발가락 끝까지 짜릿했다. 신인 아이돌 중 가장 주목받는 그룹. 2017년의 최고 화제 상품이 된 감각이 더없이 좋았다. 팔려가야 할 곳이 많았다. 고척돔에서 데뷔 쇼케이스를 준비했고,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와 인터뷰와 화보 촬영 스케줄을 정신없이 소화했다. 모든 게 감사했고 모든 게 즐거웠다. 피곤한 건 사실이었지만 피곤하지 않은 날들보다는 나았다. 민현이도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다. 피곤해서 즐겁다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애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혼자라면 버티기 어려울 스케줄이었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견딜만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프로그램 촬영 당시 마주쳐본 적 없던 멤버들부터, 원래도 친했던 멤버들까지. 11명의 멤버들과 제각기 다른 형태로 친해졌지만 민현이와는 조금 더 애틋했다. 우리는 열한 명의 멤버 중 유일한 동갑내기였다. 동생들 앞에서는 진지한 형 노릇을 자처하던 황민현이 내 앞에서는 드물게 무례해졌다. 야식을 먹지 않는다고 약속해놓고 몰래 야식을 주문하거나, 무대 위에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따위의 장난을 쳤다. 가끔은 내 얼굴을 바라보다 ‘잘생겼다’며 맥락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얼빠진 장난이 어이없었지만 동시에 그 모습이 좋았다. 황민현의 가장 친밀한 영역을 독점한 것 같다는 뿌듯함이었다. ‘뭐야’라고 타박하면서도 황민현의 장난을 기쁘게 웃어 넘겼던 건 그런 이유다.

 

그 감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달라진 감각을 깨달은 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였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늘 각자 다른 멤버들과 다른 조합으로 움직였다. 한 프레임 안에 잡힐 일조차 드물었다. 개인 예능을 나가더라도 민현이와 붙어있을 일이 많지 않았다. 문제 될 일은 아니었지만 종종 아쉬워졌다. ‘친해지면 사투리 쓰는구나’를 말할 때의 우리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 쪽잠을 자도 모자랄 시간에 서로의 불안감을 나누던 감각들. 당연히 내 것인 줄 알았던 황민현의 순간들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사이 황민현은 동생들과 불쑥 더 친해졌고, 특히 진영이와 우진이와는 친형제처럼 가까워졌다. 성운이 형과도 자주 맛있는 것을 먹으러 나갔다. 동생들을 마음껏 귀여워하고 룸메이트 형에게 마음껏 예쁨 받는 황민현.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나에게도 황민현이 늘 첫 번째 친구 사이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나 드라이브를 나갈 때, 민현이 아닌 다른 멤버들과 함께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쩐지. 어쩐지 아주 자꾸만. 황민현의 무례한 장난들이 내가 아닌 성운이 형을 향할 때. 민현이가 자연스럽게 나를 거쳐 진영이의 곁에 붙어 앉을 때. 나는 종종 기분이 묘해졌다. 괴이한 욕심이었다.

 

가장 기분이 묘해진 건 유닛 결성을 위한 리얼리티 촬영 순간이었다. 황민현이 유닛 대상자로 나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또 내심 한구석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나 보다. 왜냐고 묻는다면, 글쎄. 우리는 개안즈였고, 동갑내기였으니까? 황민현도 개안즈라는 조합이 맘에 든다며, 팬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고백하기도 했으니까? 우리는 종종, 숙소에서 서로의 음악 취향을 공유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좋아하는 트랙 리스트를 나눠 부르기도 했다. 음악 취향이 완벽히 일치하진 않았지만 종종 꼭 들어맞는 그럴듯한 노래들이 있었다. 유닛, 너랑 하면 재밌겠다. 워너원 유닛 결성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종종 나누었다. 황민현은 언제나와 같이 무심한 다정함으로 ‘나도 성우랑 하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민현이의 로켓 속 얼굴은 내가 아니었다. 황민현은 늘 그랬다. 말만 많았다. 울컥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최대한 덤덤하게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이미 끝났어. 이미 아닌 걸로 밝혀진 사람이야. 로켓 뚜껑을 열었다. 제 마음 속의 주인공은 황민현입니다. 민현이가 멀리서 외쳤다. 아, 내가 옹의 마음을 몰라보다니. 그때는 정말로, 황민현의 입술이 더없이 밉살스러웠다.

 

유닛 결성이 모두 완료된 어느 날, 황민현과 단둘이서 족발을 먹었다. 숙소 멤버들이 모두 외출한 날이었다. 노래 녹음도 어느 정도 끝나 여유로운 상황이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족발을 씹었다. 평소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데, TV에서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황민현과 나, 그리고 멤버들의 얼굴이었다. 유닛 결성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재방송을 탄 모양이었다. 웃기려고 하지 마. 민현이가 내 얼굴에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우리 운동회 짝꿍하고 다 했는데.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너랑, 유닛하고 싶다고 내가 늘 그랬는데. 황민현 너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터무니없이 진지한 목소리였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진심에 내 자신도 놀랐다.

 

“뭐야. 옹성우. 서운했어?”

“그럴 리 있겠냐. 우리 노래 진짜 환상이거든.”

“성우 너는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데뷔도 같이하자고 그러더니, 유닛도 같이하자고 그러고. 성우야. 나를 너무 좋아하면 안 돼. 나는 인기가 많잖아. 황민현이 특유의 건조한 웃음소리로 하하하 웃었다. 나는 남은 맥주캔을 들이켰다. 혀끝이 썼다.

 

“야. 그래도…”

 

같이 해. 유닛은 같이 못 해도 개안즈는 같이 해. 워너원도 같이 하고 95 조합도 너랑 나만 둘이 같이해. 부러 술에 취한 얼굴을 연기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을까. 차라리 시뻘겋기라도 하면 좋겠다. 취한 것처럼. 맥주 한두 잔으로 취할 주량도 아니었지만, 굳이 취한 척. 목소리를 낮춰 중얼거렸다. 민현이와 시선을 맞출 수 없어 애꿎은 족발 앞다리만 툭툭 건드렸다. 황민현이 그 말을 듣고 하하하 웃었지만 표정까지 살피진 못했다. 어쩌면 황민현은, 특유의 당황스럽다는 얼굴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얼굴을 봤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했을까. 담백하게 버무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모든 게 옹성우답지 않았다.

 

옹성우답지 않은 순간은 또 있었다. 모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서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는 늘 ‘믿고 맡기는 옹성우’의 포지션이었다. 워너원 활동을 하면서 예능 프로그램 순서가 익숙해졌고, 카메라 앞에서 까부는 것도 즐거웠다. 시금치를 신나게 무쳐 민현이의 입에 넣어줄 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방청객들의 호탕한 웃음소리 앞에서 뿌듯해졌다.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문제는 진영이의 얼굴을 칭찬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MC들이 진영이의 얼굴이 잘생긴 이유가 무엇이냐며, 왜 얼굴픽으로 배진영을 선택했냐며 닦달해왔다. 할 말이 궁색해졌다. 나는 정말로 진영이를 뽑은 적이 없었다.

 

“저는 사실 뽑은 적이….”

 

담백하게 넘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 자신도 그걸 알았다. 진영이는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고, 때로는 민현이가 아닌 배진영을 얼굴 픽으로 선택했다고 해서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진영이는 종종 민현이와 얼굴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어쩐지 굳이. 자꾸만. 변명하고 싶어졌다. 황민현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는 말간 눈빛. 내가 얼굴픽으로 누구를 선택하든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 때문에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하기 싫었다.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렸다. 나는 늘 민현이밖에 안 뽑았는데. 얼굴을 뽑는 일이 있으면 늘 민현이를 뽑았어. 주절거리며 변명을 거듭하자 지성이 형이 재빨리 거들어주었다. 맞아, 성우는 늘 오로지 민현이밖에 안 뽑았어. 그 타이밍이 고마웠다. 카메라 앞에서 갑분싸 상황이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황민현 역시 나를 거들어주려는 듯 애교 어린 표정으로 화답했다. 다행히 카메라 앞의 분위기는 지나치게 어색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진영이의 얼굴을 칭찬했다. 나의 칭찬을 마지막으로 녹화 방송이 잠시 중단됐다. 카메라 테이프를 점검하는 쉬는 시간, MC들이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성우 씨는 민현 씨 얼굴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아, 네.”

 

민현이가 여자들이 되게 설레할 그런 얼굴인 것 같아요. 또다시 지나치게 진지한 말투였다. 내 말에 MC들이 조금 웃었다. 그렇구나. 성우 씨는 정말로, 민현 씨 얼굴을 좋아하네요. 잘생긴 사람들끼리 사이좋으니 보기 좋아요. 그 말을 들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정말로 옹성우답지 못했다. 우리 과 최대 인싸로 불리며 과대까지 했던 옹성우는 어디 갔지? 이게 뭔지, 대체. 옹성우가 이게 무슨 꼴인지 대체. 박우진과 명란젓 맛집을 가겠다며 떠들고 있는 황민현을 노려보았다. 민현이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손을 흔들었다. 성우야. 너도 명란젓 먹으러 갈래?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명란젓 맛집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민현아. 그리고 안 먹으러 갈 거 뻔히 알거든.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는 걸 내가 가장 먼저 알았다. 왜 그런 표정이야, 옹청아. 정신 차려. 아직 촬영 중이야! 황민현이 입 모양으로 종알거리며 잔소리를 했다. 그 말 때문에 더 울고 싶어졌다. ‘옹청이’면 차라리 좋겠다. 흘러가는 변화를 아예 모른 척하고 싶었다. 달라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게 조금 두려워졌다. 민현이의 잔소리를 피해 시선을 위로 올리니 밝은 조명등이 눈에 띄었다. 마치, 파이널 무대를 연상시키는 듯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서 있는 아이돌로서의 옹성우를 기억해야 했다. 다시 황민현을 바라봤다. 여전히 취향인 얼굴이었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응. 민현아.

정신 차릴게.

 

큰 소리로 대답하자 민현이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

 

 

 

그래서 카메라부터 구입했다.

 

다른 관심거리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전부터 관심 있던 사진을 제대로 배워볼 기회였다. 마침 가장 마땅한 피사체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해외투어를 다니면서 성운이 형을 찍고, 잠옷 입은 대휘를 찍고, 풍경 사진도 찍고, 멤버들에게 내 모습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포토샵으로 보정을 배우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민현이를 굳이 찍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꾸만 황민현이 옆으로 들러붙었다. 나도 찍어줘 성우야. 성운이 형을 찍으려는데 황민현이 대뜸 다가왔다. 특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몇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황민현까지 찍기 시작하니 자꾸만 사진첩 속 민현이의 비율이 늘어났다. 그래, 이 정도는. 얼굴이 취향이니까. 얼굴이 취향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자꾸만 카메라 촬영 버튼을 달칵거렸다.

 

황민현은 내 앞에서 더없이 괴이한 표정들을 잘 지어 보였다. 엽사가 남으려면 어쩌려고 하는지, 무방비한 얼굴이었다. 멤버들은 종종 내가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민현이만은 한 번도 보정 전 제 사진을 보여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 넌 나한테, 사진 보여 달라고 안 해?”

 

황민현이 그 말에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늘 잘 찍어주잖아.”

“너 나를 너무 믿는 거 아냐?”

“그럼 내가 옹 작가를 믿지 누구를 믿어.”

 

그 말이 묘하게 만족스러워서 새벽에도 포토샵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콘서트 일정으로 피곤한 어깨를 주무르며, 새벽 3시까지 황민현의 얼굴을 매만졌다. 사진을 찍거나 보정을 해보면 알게 된다. 사진 속 그 사람이 어떤 눈매를 하고 있는지, 콧대가 어느 방향으로 뻗어있는지, 입술 모양은 어떠한 형태인지. 얼굴 색감을 조절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참 잘도 빚은 얼굴이라고. 색이 고운 얼굴이라고. 시적으로 생긴 얼굴이라고 감탄하면서 마우스를 달칵거리다가 또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이러려고 카메라를 구입한 게 아니었는데. 한숨이 나왔다.

 

호텔 발코니로 나가 바람을 맞았다. 오래전 끊은 담배 생각이 절로 났다. 불 꺼진 옆방의 윤곽을 살피면서, 나는 또 황민현에 대해 생각했다. 심지어 옆방 주인이 황민현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민현이가 방 밖으로 나와 나에게 소리라도 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도피하려 했으나 녹록지 않았다. 황민현의 사진첩 비율이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높아졌다. 가끔은 멤버들이 타박을 줬다. 야, 너희 개안즈라고 너무 챙기는 거 아니냐? 거기까지 생각이 달하니 모든 게 아득하고 멀게 느껴졌다. 한숨을 쉬며 찬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아팠고, 황민현이 원망스러웠고,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그리고 또 조금 눈물이 났다. 이제는 정말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민현이를 좋아하는구나.

 

처음에는 얼굴인 줄 알았다. 취향의 얼굴이니까. 인터뷰 도중 자꾸만 민현이의 입술을 살피게 되는 건, 그냥 취향인 얼굴이라서. 너무 취향인 얼굴을 만나면 그럴 수도 있다고 믿었다. 민현이의 눈도 코도 입술도 예뻐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지경까지 도달하고 나서는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분위기를 읽는데 능숙한 내가, 굳이 카메라 한복판에서 진영이의 얼굴보다 민현이의 얼굴을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그래서 촬영장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을 때. 아니 어쩌면 그 오래전부터. 다른 멤버들이 민현이와 지나치게 가깝게 붙어 있을 때 마음이 덜컥거리던 그 순간부터. 어쩌면 아니. 모든 것은 어쩌면. 정말 처음, 파주 영어마을 숙소에서 그 애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때부터 시작한 감정인 지도 몰랐다.

 

“하… 진짜 어쩌냐.”

 

입 밖으로 꺼내고 보니 생각보다 쉬운 감정이었다. 계기가 어떠하든 좋아하는 감정은 좋아하는 것이었다. 끝끝내 부정하고 싶었고 끝끝내 망가뜨리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워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명확한 감정 앞에서 나는 패배를 선언했다. 졌다. 내가 졌어. 이제는 부정하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마음을 황민현에게 고백할 일은 없을 것이라 믿었다. 좋아하는 걸 인정했다고 해도, 고백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언젠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걷고 헤어질 것이고, 서로의 얼굴을 가장 좋아했던 유려한 친구 사이로 남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과 함께 얼굴을 묻었다. 눈앞의 풍경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발코니에서 서성였는지, 여름 해가 뜨려는 모양이었다.

 

“성우야. 뭐해?”

 

밝아오는 지평선과 함께 누군가가 창틀을 열고 등장했다. 옆방이 누구였더라. 진영이었나, 지훈이었나, 매너지 형이었나.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미간을 구기고 고개를 숙인 채 귀를 막았다. 물론 헛된 발버둥이었다. 거기서 너 뭐해? 어슴푸레한 새벽빛 속에서 누군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거기서 눈치채고 말았다.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대상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민현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호텔 방음이 별로야. 너 한숨 쉬는 소리 다 들려서 깼잖아. 민현이가 짧게 타박하면서 웃었다.

 

“거기, 니 방 아니잖아.”


너 왜 거기에 있어? 내가 절망스러운 듯 묻자 황민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다 보니 방이 바뀌었어. 


“성우 넌 왜 안 자?”

“그냥.”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있으면 뭐 어쩌려고. 네가 해결이라도 해주게? 그런 말이 튀어나올까 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오늘 오프잖아. 스케줄도 없는데, 방에서 술이나 한잔 할까? 내 침묵을 오해했는지 황민현이 눈치를 살폈다. 도저히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그래도 연영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영화 주연 경력도 있는데, 내가 너 하나를 못 속일까.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변명했다. 아냐, 민현아. 자. 그냥 답답해서 그랬어. 이틀 뒤 콘서트할 거 생각하니 걱정되어서. 잘할 수 있겠지, 우리? 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황민현의 답을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섰다. 잘했다 옹성우, 잘했어.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황민현을 거절했고, 지금 덜컥거리는 이 마음도 삼 개월 뒤쯤에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카메라와 노트북을 치우고 침대에 누웠다. 하얀 시트가 포근했다. 자자. 좀 자고 난 뒤에는 괜찮을 거야. 그리고 최대한 민현이와는 거리를 두자.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민현이 사진 같은 건 찍지도 말고, 걔 입술이 예쁘게 생겼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고. 거기까지 생각을 마쳤을 때 벨 소리가 들렸다.

 

“성우야. 너 정말 괜찮아?”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가 내 방문 앞에 서 있을 지는 너무나 뻔한 얘기였다. 눈치라고는 좆도 없는 황민현. 아아, 황민현. 황민현 씨. 저 고민 있어요. 정말로 고민 있어요. 당신이 바로 제 고민 상대라고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민현이가 웃고 있었다. 맹한 얼굴에 이번에는 정말 눈물부터 쏟아졌다. 당황한 황민현을 끌어당겨 그대로 끌어안았다. 쿵 하고 현관문이 닫혔다. 민현이 너는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가지구 어떻게, 어떻게 할라고 그래. 민현이의 몸을 안고 펑펑 울었다. 민현이가 손을 뻗어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성우야. 왜 그래.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나를 꽉 끌어안는 민현이의 손길에 열감이 붙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황민현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

 

 

 

내가 울기 시작하자 황민현은 안절부절못한 목소리로 안색을 살폈다. 콧물까진 나오지 않게 애쓰며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나 고민 있어.”

“빨리 말해 봐.”

“민현 씨 저한테 왜 그랬어요?”

“내가 뭘…?”

“저한테 악감정 있어요?”

 

무슨 소리야, 성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황민현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손사래를 쳤다. 내가 평소 장난이 심했다면 사과할게. 황민현은 자신이 나에게 오해를 줬다는 생각했는지, 더듬더듬 변명을 시작했다. 내가 너를 좋아하고 또 우리가 동갑이니까. 그래서 내가 너를 좀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 다정스러운 말투에 또 내 눈시울이 시뻘겋게 차올랐다. 고백을 할 생각도 없었지만 고백한다고 해도 이렇게 거지같이 할 생각은 없었는데. 무엇 하나 평소의 나답지는 않았다. 콧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호텔방 테이블 위 티슈를 뽑아 코를 풀었다.

 

“우리는 좀 특별하잖아.”

“너한테 내가?”

“그래. 성우 너는.”

 

항상 재미있고 잘생겼고, 사진도 잘 찍고, 춤도 잘 추고, 그리고 멋있잖아. 방송 초반부터 성우 너는 용이었잖아. 내가 너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 이렇게 잘생긴 사람도 세상에 있구나 싶었어. 예능도 잘하고 분위기도 잘 읽고 노래도 잘하고. 나랑 꼭 데뷔를 같이 하고 싶다는 성우 네 덕에, 나도 많이 위안을 받았어. 뜻밖의 진심 어린 칭찬 폭탄이었다. 황민현이 당황하면서 내 칭찬을 더듬거리는 모습은 제법 유쾌했다. 나는 민현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반응 없는 무표정한 내가 의아했는지 민현이는 이제 얼굴이 하얗게 질릴 지경이었다. 옹성우가 큰일이 났구나, 정말 큰일이 나버렸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뻔했다.

 

“듣기 좋으니까 계속 해봐.”

“음… 사람이 누구든 자존감이 떨어질 때가 있대. 성우야.”

“…황민현. 너 지금 완전히 헛다리 짚고 있는 거 모르지?”

 

민현이가 내 지적에 미간을 구겼다. 야. 뭐가 문제인지 말해줘야 나도 너를 도울 수 있지. 나는 그 말이 아주 황민현답다고 생각했다. 민현이가 나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배려는 딱 두 번에서 세 번까지. 내가 이번에도 민현이의 배려를 거절한다면 황민현은 산뜻하게 ‘네 뜻대로 하라’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가 두 번 다시 내 안색을 살피지 않겠지. 동생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면 몇 번이고 달래주었을 황민현이, 나에게는 늘 엄격했다. 그건 정말 웃기고도 짜릿한 감각이었다. 그의 말처럼 어쨌거나 나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손을 뻗어 민현이의 손을 잡았다. 민현이의 손은 약간 땀에 젖어 있었고 손가락 끝이 굳어 있었다. 마치, 방송 파이널 무대에서의 밤처럼. 


민현아 나는.


그리고 너는. 그날의 우리는 생방송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황민현은 음방 짬바가 있어 우리보다 나았지만, 그래도 모두가 불안했던 순간. 핸즈온미 팀 올라가세요. 스태프들이 소리쳤다. 새파랗고 새하얗던 조명들. 멀리서 박수 소리와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민현이의 옆모습을 살펴봤다. 문득 눈이 마주쳤다. 황민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든 게 고요해졌다. 바람에 리본이 팔랑거리기라도 했던가.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이 정지 화면처럼 굳어졌던가. 데뷔에 대한 욕망은 지나치게 강렬했으나, 꽉 닫힌 황민현의 입술만은 경건했다. 다 낡아지고 버거워진 순간에도 그 입술만은 약속처럼 남아있을 것 같았다. 모든 감정이 조금 너그러워졌다. 막연히 괜찮을 것 같다는 희망감. 너와 같이 데뷔하고 싶다. 그 생각 하나로 다른 불안을 털어버렸다. 이번에도 나는 눈앞의 황민현에게 시선을 맞췄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불안은 지겨운 존재였다. 민현아. 나는.

 

“너랑 지금 키스하고 싶어.”

“뭐?”

“지금 내 고민이 그거야.”

 

너랑 지금 당장 키스하고 싶어. 그게 내 고민이야. 그 말에 황민현의 귓가가 시뻘겋게 붉어졌다. 성우야, 우리 남자잖아. 제일 먼저 나온 첫마디가 그거라서 조금 우스웠다. 나도 알아. 남자인 거. 황민현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경멸스러운 눈초리는 아니었다. 내게 잡힌 손조차 뿌리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승부수를 던져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판국의 승패가 달려있는 순간이었다. 황민현이 몇 번이고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그 애는 당황하면 늘 그런 얼굴을 했다. 조금 더 다가가 입술 사이 거리를 좁혔다. 너도 이미 눈치 챘는 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를 낮춰서 부드럽게 속삭였다. 10cm만 다가가도 이제 입술을 부빌 수 있는 거리였다. 숨결이 와 닿을 것 같은 감각에 아랫배까지 아찔해졌다. 내가 널 좋아해. 그러니까.

 

“키스해도 돼?”

“…안 된다고 하면?”

“그러면 바로 거절했어야지.”

 

그런데 너, 거절 안 하고 있잖아. 내가 지적하자 황민현의 귓가가 다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 이상 여지만 남기고 싶지 않았다. 새벽녘의 나른한 풍경, 이성보다는 감성의 움직임을 따를 시간대였다. 언제나 이성적인 황민현에게도 이국의 새벽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부디 그러기를 간절히 바랐다. 해보고 결정해. 나 키스 잘하니까. 성급하게 황민현의 턱을 당겨 입부터 맞췄다. 너무 놀라지 않게. 천천히. 입술만 부드럽게 문대었는데도 만족스러운 말캉함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꾸만 눈이 가던 입술이었다. 실제의 감각은 환상보다 더 선명하고 부드러웠다. 혀를 섞지 않으려고 입술만 벌려 부드럽게 민현이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으. 황민현이 저도 모르게 한숨 소리를 내뱉으며 입술을 벌렸다. 뾰족하고 말캉한 혀끝이 입술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야. 입가를 닦으며 민현이의 얼굴을 떼어내자, 황민현이 어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성우야.

 

“혀 섞은 거 너다.”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어. 이번에는 황민현도 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훅 얽혀온 혀의 감촉은 달콤했고 미끈거렸다. 내 손이 자연스레 그의 턱을 거머쥐었고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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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면) 외전은 성인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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