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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년] Synchronize 下

동시에 발생하다

* http://posty.pe/7v4xpm 톢님의 글에서 이어지는 릴레이 소설입니다 :)



불안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지. 애인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성우였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사람은 냉정해진다. 옹성우가 두 손을 들었다. 항복.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 목숨이 너무 아까워서요. 성우는 상황 파악이 빠른 편이었다. 패를 뒤집어야 할 때와 판을 뒤엎어야 할 때를 직감적으로 파악했다. 그에게는 '포기'가 특별히 어렵지 않았다. 히어로로 살기 위해 이미 많은 것들을 포기한 생이었다. 평범한 학창시절이나, 평범한 가족관계 같은 것들. 태어나자마자 머릿속에 칩이 심어졌고 부모와는 강제로 헤어졌다. 수용소에 갇혀 예비 히어로들과 무리를 이루고 살았다. 정상적인 유년기가 아니었다. 히어로가 되기 위해 다른 모든 욕구를 소거 당한 생이었다.

 

팀 메이트라며 대뜸 소개받은 어린 애들을 돌보는 것도 리더인 성우의 몫이었다. 그래도 진영이나, 지훈이와 어울리는 삶은 나았다.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영웅은 사랑받는 동시에 미움받는 존재였다. 빌런과의 전쟁은 늘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졌다. 성우의 선의가 어떠하든 때로는 사물이 부서지고 때로는 사람이 짓밟혔다. 사고는 대부분 국가 보험으로 처리됐지만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날뛰던 시민도 있었다. 네가, 네가 뭐라고. 대뜸 등짝부터 걷어차였고 옹성우는 허탈해졌다. 박지훈이 ‘누가 누구 목숨을 구해준 건데’라고 길길이 날뛰었으나 성우는 그저 웃었다. 그런 삶도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애초에 다정해지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영웅의 삶이었다.

 

그래서 옹성우는 황민현의 삶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목숨을 구해준 대상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했던 그때처럼. 스파이. 좋아. 특별할 것 없는 비극적 클리셰. 그러나 마주친 시선은 언제나처럼 곧고 맑았다. 처음에는 시선을 피하며 머뭇거리던 황민현이 이내 체념한 듯 단정해졌다. 잘 뻗은 연인의 콧대를 바라보며 옹성우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 진짜 좆같네. 모든 상황이 몰래카메라처럼 아득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굳이 너는 나에게. 꼭 그렇게까지 다정해야 했을까.

 

입을 맞추거나 콘돔 껍질을 뜯던 기억 같은 것들이 치고 올라와 구토감으로 이어졌다. 민현아, 내가 뭐라고. 평소보다 잘 차려입은 옷자락이 맥없이 나부꼈다. 연인에게 잘 보이겠다며 옷장을 뒤지던 아침이었다. 히어로 1팀의 리더이긴 했지만 특별한 권한도, 정보조차 없었다. 관계를 맺던 황민현도 알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빼내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고위 간부들로부터 기꺼이 쓰임 받다 기꺼이 치하받다 마지막 순간에는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생. 그게 평범한 히어로의 인생이었다. 성우가 민현을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황민현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넌 나한테 정말 늘 너무하네.”

 

처음 본 순간부터 '얼굴이 취향'이라며 헤실거리던 황민현을 떠올렸다. 민현의 뺨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바로 손목에 수갑부터 채워졌다. 이렇게 끌려가면 사망 엔딩일까. 침묵 속에 눈가가 가려졌고 중력이 뒤틀렸다. 공간 전이를 시도하는 진동에 척추부터 덜덜 떨려왔다. 옹성우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민현아. 하나만 대답해줘. 굳이 이 분수대를 고른 건 계획이니, 아니면 우연이니? 황민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절망보다도 허탈감이 먼저 찾아왔고 성우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익숙한 병실이었다.

 

 

 

/

 

 


“기분이 좀 어때?”

 

하얀 가운을 입은 민현이 안경을 쓴 채 다정하게 물었다. 옹성우가 부스스한 얼굴로 민현을 바라보았다. 왈칵 눈물부터 터져 나와 옹성우는 그 자리에서 조금 울었다. 성우의 마른 등을 민현이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성우가 진정된 듯 보이자 민현이 다시 차트와 펜부터 집어 들었다. 달칵거리는 볼펜 소음이 병실 안에 번졌다. 괜찮아, 성우야? 이번 기억은 어땠어?

 

“너무 끔찍했어….”

“어떤 내용이었어?”

“네가 배신하는 꿈”

“내가?”

 

그래,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성우가 지친 기색으로 무릎 위에 제 얼굴을 묻었다. 꼭 이런 것까지 배워야 해? 성우가 갈라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질문의 형태였지만 속뜻은 투정에 가까웠다. 올바른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감정의 결속에서 무뎌지는 방법이었다. 갈등과 사랑과 배신 따위로 무너지는 선대 영웅들을 바라보며 국가는 몇 가지 계책을 세웠다. VR 시스템과 가상기억 장치를 이용해 예비 히어로들에게 감정을 훈련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연인의 배신을 되새긴 옹성우는 숨이 막혀 헐떡였다. 가상으로라도 지나치게 끔찍한 꿈이었다.

 

“이번 코스는 C+, 전혀 해결을 못 했네.”

 

넌 잡혀갔고 그대로 사망 엔딩이고. 재수강해야겠다. 민현이 냉정하게 성우의 기억 판로를 확인하며 성적을 내렸다. 성우와 민현은 파트너였다. 과거 히어로는 팀 단위로 움직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2인이나 3인 체제를 선호했다. 팀 단위로 움직이면 조직 갈등이 빈번하다는 이유였다. 대부분 학창시절부터 제 파트너를 골랐고, 파트너와 부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살았다. 성우는 다른 갈등에 있어서는 탁월한 인내심을 보였지만 연인에 대해서만은 무르고 약했다. 황민현이 지적했다. 이렇게 해서야, 너도 나도 프로 데뷔는 못 할걸. 현장에 나가지도 못하겠다.

 

“넌 어떻게 했는데.”

“나? 나는 너.”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살시켰는데. 그리고 나도 죽었어. 그래서 내 성적도 B+이야. 이 꿈에서 A+을 받았던 학생은 선배 K 하나가 유일하다고 했다. K 선배는 그 자리에서 연인을 포함한 여섯 명의 빌런들을 모두 살해하고 결말을 내렸다. K 선배는 A+을 맞은 뒤 연인이던 J 선배에게 얻어맞았다고 한다. 연인에게 얻어맞는 게 나을까. A+이 나을까. 황민현이 평탄하게 웃었고 성우도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또다시 배신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연인을 즉살시킬 수 있을까. 여전히 답은 미궁 속이었다.

 

“성우 너는 나를 너무 좋아해.”

 

민현이 기억 조절 장치를 더듬거려 성우의 꿈을 헤아렸다. 히어로 1팀의 리더, 꿈속의 성우가 민현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자몽에이드를 들고 성우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남의 연애사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성우는 그 테이프를 멍하니 살폈다. 같은 기억을 살피던 민현의 눈초리가 조금 파리해졌다. 길게 뻗은 눈꺼풀이 두어 번 깜빡이더니, 민현이 문득 선생님같이 단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나를 너무 좋아하지 마.”

“왜 또 그런 소리를 해?”

“…넌 영웅이잖아.”

“너도 영웅이잖아.”

“나보다 네가 상위 클래스잖아.”

 

내 능력은 솔직히 별거 없잖아. 난 B급이고, 넌 S급이고. 성우 너를 잃는 게 더 국가적 손실이니까. 황민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실제로 민현의 클래스는 성우보다 낮았다. 파트너를 맺는 것은 두 사람의 권리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을 부정하지 못했지만, 성우가 좀 더 나은 파트너를 골랐어야 한다는 여론도 팽팽했다. 민현이 입을 열었다. 성우야. 약속해 줘. 결정적인 순간엔 네가 나를. 민현이 그렇게 말하고 제 심장 위에 성우의 손을 가져다댔다. 알겠지, 성우야? 꼭 약속해야 해. 민현이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나는 네가 아니면 싫어. 끝을 맺는 건 꼭 너였으면 좋겠어. 

 

“다음번에는 제대로.”

 

제대로 잘 죽여줘야 해. 


연인이 다정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성우가 제 눈을 깜빡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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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클리프행어였습니다.


클리프행어(영어: cliffhanger)는 소설이나 영화 등의 작품에서 쓰이는 줄거리 장치이다. 주인공이 어렵거나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다음 화에 계속...”(To Be Continued)과 같은 표현을 예로 들 수 있다. 


다음은 릴리님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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