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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황] 소년의 혀 01

혀를 아래로. 조명등이 어금니 안쪽을 살폈다. 괜찮네. 이번에는 혓바닥을 살펴볼 차례였다. 제1대구치는 상하기 쉬운 부위니까 조심하자. 관리하고 있지?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초콜릿 빵만 먹지 말고. 치실 빼먹지 마. 민현의 지적에 진영이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뭐, 괜찮아 진영아. 나도 단 거 좋아하잖아. 간식은 식사 후에 몰아서 먹으면 돼. 자주 먹는 게 가장 안 좋거든. 미러와 익스플로러를 치우면서 민현이 기지개를 켰다. 타액으로 축축해진 장갑을 벗자 마른 바람이 손톱 안에 감겨들었다. 오후 2시의 접대실은 따뜻하고 나른했다.

 

진영에게 충치를 주의하라고 말했지만 민현도 젤리를 달고 살았다. 치대생이라도 젤리를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나.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되새기며 민현은 자신의 삶을 회상했다. 철딱서니 없는 아버지 때문에 기회란 기회는 줄곧 놓치던 삶이었다. 친엄마부터 도망갔지만 그래도 죽을 듯 공부했다. 해야 할 것을 해내면 무지개 끝자락에 황금 동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희망은 늘 희망으로 남았다. 기업 장학금을 끌어모아 겨우 치대 문턱까지 밟았더니 아버지가 사고를 쳤다. 불법 사채였다. 이번에는 정말 될 줄 알았어. 패배자는 늘 비슷한 변명을 반복했다. 법적으로 의무가 없는 빚이었으나, 건들거리는 사내들이 집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두툼한 체격의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황민현이라고 했나. 요 옆 학교 다니고? 그것뿐이었지만 등골이 오싹했다.

 

결국 아버지는 팔월의 밤에 증발해버렸다. 어머니가 짐을 싸고 도망친 것처럼 아버지도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황민현은 절절맸다. 스무 살이 넘었다고 어른은 아니었다. 황민현은 학교와 집 사이의 길거리를 몇 번이고 헤매었다. 검은 양복의 사내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전공서를 붙들고 달음박질쳤다. 결국, 상상이 현실이 됐다. 민현은 기도했다. 제발 누구든지, 도와주세요. 기도는 현실 앞에서 늘 무력했다. 시꺼멓던 밤에 대가리부터 얻어맞았다. 얻어맞는 순간에 황민현은 의외로 태연했다. 예상 가능한 불행 앞에서 사람은 단호해지는 법이다. 얼떨떨한 정신으로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 어딜 봐도 민현의 집은 아니었다. 벌떡 몸을 일으키니, 침대 곁에 앉아있던 노부인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민현은 순간, 온갖 상상 속에 잠겼다. 장기가 팔린다거나 뒷구멍이 따먹혀서 호모가 된다거나,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정당한 전개처럼 느껴졌다. 상상이 거기까지 미치자 조금 울고 싶어졌다.

 

손을 흔든 여성은 우아한 주름이 돋보이는 노부인이었다. 적어도 호모 섹스의 전개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성애적인 방식의 접대이지 않을까. 민현이 허벅지를 붙이고 바로 앉았다. 노부인의 단정한 치맛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부유를 상징하는 커다란 창틀에서 구월의 색(色)이 흘러들었다. 아름다운 방이었다. 장식된 도자기나 그림 같은 것들이 대충 보기에도 억 소리 나게 부유해 보였다. 선생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 모셔왔어요. 방법이 거칠었다면 사과드립니다. 단정한 목소리였다. 민현은 ‘방법이 두 번 거칠었다면 저세상에 갔겠네요’라고 투덜거리고 싶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눈치를 봐야 할 타이밍이었다.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여성이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 부탁드릴 일은, 도련님을 봐주시는 겁니다. 좋은 값으로 셈을 치렀으니 선생님에게도 나쁜 얘기는 아닐 겁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힘이 실렸다. ‘네 생각이 어떠하든 거절은 없다. 싫으면 뒈지시든가’ 황민현은 그녀의 말을 가장 산뜻한 방식으로 이해했다.

 

“딱 일 년. 스무 살까지면 됩니다.”

“일 년…이요.”

“네. 그렇습니다.”

 

‘일 년이요’라는 말 속에는 ‘일 년이나요’라는 불만이 숨어있었다. 노부인이 의도를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차를 좀 드시겠어요? 부인이 쟁반 위의 찻잔을 건넸다. 민현이 얼떨떨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연한 녹빛의 차를 삼켜냈다. 입안이 쓰고 달았다. 모든 것이 너무 태연한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황민현조차 평온해졌다. 사채빚에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해서 의문의 저택에 끌려왔습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대한민국의 사법체계가 흔들릴 만한 이야기였지만, 창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나치게 가을다웠다. 그래서 민현은 평온해지는 쪽을 택했다. 눈을 깜빡이자 노부인이 너그럽게 웃었다. 당황스러우시죠? 우선은 도련님이 오실 테니까 인사를 나누세요. 동생을 돌봐준다는 느낌으로 편하게 지내세요. 벌써 열아홉이니 기저귀를 갈아주실 것도 아니고. 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묘한 말투였다.

 

“다만, 충치가 생기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그래서 치대생을 고른 거니까요. 학교는 이미 휴학 처리를 해두었습니다. ‘본인 동의도 없이 어떻게요?’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으나 선택지는 없었다. 망했구나. 예과와 본과 사이의 6년 레이스를 견디지 않으면 낙오하는 경기였다. 치대생은 웬만하면 휴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경로가 꼬이기 때문이다. 아아, 그럴 듯했던 나의 엘리트 인생이여, 안녕히. 단단해 보이던 미래는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서 스르르 흘러갔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와 살았다. 되고 싶은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생이었다. 민현은 잠시 실내를 살폈다. 정적이고 안정된 공간. 창틀 밖에서는 작은 새들이 울었다. 황민현은 울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뜯지도 않았다. 노부인의 닫힌 입술에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쉬이 열리지 않을 입가의 주름이었다. 견고한 벽처럼 성을 쌓은 노부인의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민현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제게 주어진 현실을 소화하는 것쯤이야 자신이 있었다.

 

“고마워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요. 진영아. 들어올래? 노부인이 소년의 이름을 부르자, 문틈에서 삐꺽한 소년 하나가 걸어 나왔다.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어렸고 소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깨가 듬직했다. 조막막한 얼굴에 눈코입이 꽉 들어찬 모양새였다. 꺼먼 눈동자만 심지 있게 번뜩였다. 고집이 좀 있겠구나. 만만치 않겠구나. 그런 평가를 흘리면서 황민현이 인사를 건넸다. 배진영과의 첫 만남이었다. 안녕하세요, 황민현이라고 해요.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자 진영이 빠르게 답변을 내놓았다. 말, 편하게 하세요. 눈동자가 이글이글 끓어서, 괜히 그 시선을 마주치기가 부담스러웠다.

 

편하게 지내세요. 진영이 너도 선생님 말씀 잘 따르고. 노부인이 당부했고 집안의 방들을 소개해주었다. 영화 속 대저택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세 사람이 쓰기에는 꽤 넓은 저택이었다. 진영의 방과 서재, 넓은 거실과 식당, 노부인의 방과 두어 칸의 손님방, 그리고 다목적 용도로 사용하는 접대실까지. 민현은 손님방에 제 짐을 풀어 넣었다. 모든 것이 정신없었으나 어쩐지 들뜬 느낌이기도 했다. 상황이 어떠하든 조금은 자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가 있기를 바랐다. 어디까지 돌아가야 행복해질까. 어머니가 도망가지 않았던 그 시절? 아니면 아버지가 사채빚에 말려들지 않는 그 시절? 어디로 돌아가도 행복해질 것 같진 않았다. 민현이 눈을 감았다. 깨끗한 침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고 그대로 잠들었다. 긴장감이 풀려 몸이 녹진했다.

 

일어나니, 해가 중천이었다. 

간만의 늦잠이었다.

 

 

 

/

 

 

잠에서 깨어나 식당으로 내려가니 배진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늦은 아침 식사인 듯 보였다. 화려한 식탁을 내버려 두고 진영은 굳이 대리석 바닥에 앉아 빵조각을 씹고 있었다. 마른 몸이 더 마르게 느껴졌다. 그의 주변으로 빵 부스러기들이 툭툭 떨어졌다. 진영이 ‘선생님’ 하고 대번 아는 척을 했다. 이 낯선 소년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진영아’라고 불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황민현은 대놓고 물어보는 방식을 취했다.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제 이름은 배진영인데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도련님 같은 호칭이 나을까 싶어서. 진영이 그 말에 조금 웃었다. 저 그 호칭 싫어해요. 저도 선생님이라고 부를 테니까, 선생님도 진영이라고 불러요. 진영이 식빵 봉지에서 빵을 건네주었다. 선생님도 드세요. 여기는 먹을 게 그렇게 많지 않아요. 텅 빈 식탁이었다. 식재료는 풍부했으나 대부분 인스턴트나 금세 소화할 수 있는 종류의 음식이었다. 빵, 레토르트 식품, 시리얼, 상하지 않는 잼과 몇 가지 소스들. 심지어 그 흔한 쌀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심한데. 황민현은 저도 모르게 솔직한 감상평을 내놓았다.

 

“계란후라이라도 먹을래?”

 

성장기 소년의 반찬이라기엔 지나치게 부실했다. 키 커야 할 나이인데. 황민현은 저도 모르게 걱정스러워졌다. 선천적인 다정함이나, 선천적인 참견이라고 해도 좋았다. 식탁에 앉지도 않고 익숙하게,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마른 빵을 씹는 소년. 빵 부스러기가 발바닥에 밟혔다. 배진영에게는 이런 종류의 아침 식사가 매우 익숙한 듯 보였다. 민현은 문득 자신의 아침 식사 풍경을 떠올렸다. 황민현에게도 식탁 풍경이 아름다웠던 시절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시리얼, 혹은 레토르트 된장국 따위를 밥에 말아 먹었다. 쫓기듯 음식을 씹어내며 다른 손으로 입시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민현은 늘 식탁 위에 앉았다. 혼자 먹더라도 숟가락과 젓가락을 포기하지 않았다. 저렇게 먹으니 마르지. 우물거리는 소년의 파리한 옆태를 살피며 민현은 동정심과 데자뷰를 느꼈다. 이런 저택이면, 가정부 한둘 쯤은 당연한 거 아닌가. 돈이 없어 뵈지도 않는데. 노부인은 도저히 청소를 즐길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계란 후라이요? 대뜸 요리 이야기를 꺼낸 민현에게 배진영이 신기한 듯 물었다. 선생님. 요리할 줄 알아요?

 

“아니.”


선생님은 잘 몰라, 그런 거. 


“뭐야. 그럼 빵이나 먹어요.”

 

기대감 어렸던 진영의 얼굴이 금세 무던해졌다. 휙휙 바뀌는 표정이 신기해서 민현은 진영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집쟁이처럼 보이던 첫인상이었는데 부러 손톱을 세우는 타입은 아닌 듯했다. 과외학생들과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하면 될까. 시작이 꼬인 입주 과외라고 생각할까. 황민현은 과거의 과외 학생들을 떠올렸다. 학생들은 대부분 민현을 좋아했다. 다정하고 말씨가 고운 선생을 싫어할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배진영도 특별히 적대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과거 기억을 떠올리니, 진영이 조금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사람이”

 

도전은 해봐야지, 진영아. 팔뚝을 걷어붙이고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첫 번째 칸에 계란 열 개가 고개를 내밀었다. 민현이 동그란 달걀을 들었다. 무턱대고 껍데기부터 깼다. 달걀을 툭 깨자 노른자가 프라이팬 위로 미끄러졌다. 선생님. 예열하고 기름부터 둘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진영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 맞다. 기름. 그렇네. 예열부터 했어야지. 맞다 진영아. 민현이 그제야 기름을 두르고 가스불을 켰으나 이미 늦었다. 불이 붙지 않은 프라이팬 바닥에 계란이 들러붙듯 익었다. 젓가락으로 남은 계란을 슬슬 밀어냈다. 프라이팬에 회색 스크래치가 남았다. 스크램블 에그도 아니고 후라이도 아닌 해괴한 무언가. 다 망쳐버렸지만 어쨌거나 익은 계란이었다. 정체성 잃은 계란후라이를 들고 민현이 멋쩍게 웃었다.

 

“먹을래…?”

“선생님...”

 

이게 뭐예요. 배진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핫. 생각보다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였다. 요리 잘하실 것 같았는데 진짜 못하신다. 한 줄로 요약된 자신의 요리 실력을 수줍어하며 민현이 젓가락을 가져왔다. 어쨌거나, 진영이는 빵만 먹으면 안 돼. 키가 안 자란다고. 진영이 그 말에 황민현을 바라보았다. 키는 꽤 큰 것 같은데요. 배진영이 제 몸을 일으켜 황민현과 키를 맞댔다. 봐요. 선생님보다 그렇게 작지 않잖아요. 일 년만 지나면 제가 더 클걸요? 


“그래. 선생님보다 더 크려면 잘 먹어야지.”


민현이 가볍게 반응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 앉아서 먹자. 바닥에 앉아서 먹으면 자세도 안 좋아진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뻔한 잔소리였으나, 배진영은 반박하지 않았다. 진영이 식빵 봉지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손길로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었다. 민현은 그제야, 그곳에 토스트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진영이 주인 노릇을 시작했다. 그릇을 꺼내 토스트한 빵을 올리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선생님, 커피? 진영이 묻자 민현이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은 커피 잘 못 마셔서. 진영이 대답 없이 우유를 두 잔 따랐다. 접시 위에 마른 빵이 올라왔고, 계란 후라이의 형상을 한 무언가도 함께 자리했다. 한눈에 봐도 아주 맛없어 보이는 아침 식사였다.


그럼에도 진영은 부풀어 오른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청자색 그릇을 제 앞에, 흰 그릇을 민현 앞에 정돈했다. 굽었던 어깨가 바로 펴졌다. 진영이 테이블에 앉자 가구들이 색을 바꾸었다. 차갑고 정결하기만 했던 화려함이 제자리를 찾았다. 모든 풍경이 잘 만든 미니어쳐 가구 세트처럼 완벽해 보였다. 도련님은, 도련님이구나. 진영이 식탁에 앉는 순간 빵부스러기조차 영화 명장면을 위한 소품처럼 보였다. 민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진영이 기도하듯 눈을 감았고 익숙한 식사 기도 구절을 내뱉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민현도 자연스럽게 그 구절을 따라 읽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오전 10시, 두 사람의 첫 번째 아침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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