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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년] 잘한다니까

옹년전력: 사랑의 온도

기획부터 좆같은 프로젝트였다. 


디자인팀에서 하나, 개발팀에서 하나, 영업팀에서 사람을 하나씩 꿰어오더니 그대로 셋을 붙여 TFT팀을 꾸렸다. 도저히, 절대, 이걸로 해먹을 수 있는 인원 구성이 아니라니까요? 디자인팀 옹성우가 소리쳤고, 개발팀 황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거침이 없었다. 안 되는 건 되게 하는 게, 한국인 모토인 거 몰라? 씨-발. 옹성우가 혀를 구르고 발을 찼다. 좆 같은 프로젝트. 좆 같은 블랙 회사. 옹 대리는 그날 코가 비뚤어지도록 주취의 바다 속을 헤엄치고 싶었으나, 술이라고는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알콜쓰레기 황 대리 때문에 둘이서 이슬톡톡을 부딪혔다. 민현아. 시발. 나가자. 이 회사는 답이 없어. 옹 대리가 우는 시늉을 하며 황 대리에게 매달렸고, 민현이 그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래. 나가자. 이.. 뭐 같은 회사. 마지막 욕설을 살짝 흘려 먹은 게 황 대리다웠다.

 

그래서 이 좆같은 프로젝트의 제목이 뭐였냐 하면, 이름하여 ‘뚫어보자 대기업 할 수 있다 스타트업(가제)’이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게임을 만들자고 했다. 내가 요즘 생각을 해봤는데, 게임이 그렇게 한류 열풍이래. 우리도 N 회사가 되어보지 못하라는 법 있어? 게임 회사에서 게임 만드는 소리를 하면 속 터지지야 않지. 어디까지나 프로그래밍과 개발 하청을 중심으로 하는, 스타트업에 가까운 작은 IT 회사였다. 실적 내라고 안 할게. TFT팀인데 내가 설마 그렇게 상식이 없겠어? 도전이라도 한 번 해보자. 우리도 N사 사옥 한 번 가보는 거야. 옹성우가 사직서를 품 안에 안고 오백 번 고민하는 동안, 황 대리가 그의 목덜미를 툭툭 치고 얘기 좀 나누자는 신호를 보였다. 민현이 옥상 위로 올라가고, 성우가 그 뒤를 따랐다. 끊었던 담배라도 다시 물려주는 줄 알았더니, 황 대리가 구겨진 얼굴을 하고 체념한 듯 말했다.

 

“그냥 하자.”

“싫어.”

“대충 해주고 말자. 성우야.”

“나 퇴사할 거야. 말리지 마.”

“어차피 요즘 비수기잖아.”

 

그냥 나랑 개발 동아리 했던 때의 마음으로, 아무거나 만들자.

 

황 대리는 김 대표의 친척의 친척인가, 여하튼 피의 1g 정도를 함께 나눈 사이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황 대리는 김 대표에게 마지막까지 모질게 굴지는 못했다. 부모 세대 위의 부모 세대 위의 인연과 은혜라나 뭐라나. 하지만 옹 씨는, 대한민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옹 씨는 황 씨와도 김 씨와도 친인척 관계가 아니었다. 옹성우는 김 대표에게 당당하게 사표를 던지고 단톡방에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만화 짤 따위를 올려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옹성우는, 황 대리의 구겨진 미간 앞에서는 늘 약했다. 아씨. 니가 그렇게 말하면 펄펄 뛴 내가 뭐가 되냐? 황민현이 성우의 누그러진 말투에, 눈을 마주치고 길게 웃었다. 미안해. 성우야.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얇게 휘어졌다.

 

그래서 어쨌거나 TFT팀이 꾸려졌다. 퇴직서는 영업팀 이 과장이 먼저 선수를 쳤기 때문에, 결국 덜컥 남아버린 것은 황민현과 옹성우 둘 뿐이었다. 이 과장, 그렇게 회사 나간다 블랙이다 욕을 하더니 결국 탈출에 성공했구나. 옹성우는 진심으로 그의 안녕을 빌었다. 비록 과장님이 나가면서 세컨드 플랜으로 치킨집과 바리스타 둘 중 하나를 고민할 때 마음이 조금 싸하기는 했으나 말이다. 사실 옹성우도, 회사를 박차고 나간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제 선택지도 치킨집이나 커피집, 둘 중 하나였겠지. 그 미래를 떠올리니 갑자기 블랙 회사라도 회사가 있는 게 어디냐며 약간의 소속감이 차올랐다. 게임 만드는 거. 그래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성우와 민현은 대학교내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 만났는데, 두 사람은 인디 게임 공모전 등에 참가해서 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아마 김 대표도, 그 이야기를 들었겠거니 싶은 밤이었다.

 

황 대리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본업은 본업대로, TFT팀 업무은 부업대로 쏟아졌으니까. 실무라고는 1도 모르는 대표님께서는, TFT팀을 꾸렸으니 본업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라고 말했지만 성우 팀의 4명 중 1명은 육아 휴직이었고, 남은 것은 성우를 포함한 3명이었다. 결국 성우는 ‘미안해 성우 씨’라고 울먹이는 팀장님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비타500을 빨면서 토요일 오후 10시까지 일하는 삶을 선택했다. 황 대리는 업무 비수기여서 옹 대리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그래도 성우에게 미안했는지 성우가 야근하는 밤이면 꼬박꼬박 어디선가 족발 따위를 들고 ‘짜잔’하고 나타났다.

 

 

 

/

 

 

그래서 무슨 게임을 만들 건데.

 

어차피 둘이서 만들 수 있는 게임은 종류가 많지 않았다. N사에서 런칭한 대형 RPG 게임을 베낄 수도 없고, 글로벌 기업 게임들은 더더욱.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손가락을 두들겨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몽환적인 분위기로 디자인을 뭉개는 ‘인디 게임 다운 인디 게임’이었다. 혹시라도 정말 유료 수입이 대박을 치면... 옹 대리는 약간은 희망적 결말을 기대해보았다. 왜냐하면 황민현은, 자타공인 A 대학의 개발동아리 에이스였으며 혼자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좋을 깔끔한 프로그래밍 실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님이 보너스는 챙겨준대. 내가 그건 딜하고 왔어. 잘했지, 성우야? 뺨이 차갑길래, 눈을 떠보니 황민현이 비타500 병을 얼굴에 붙이고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얼마, 달 70? 거기까진 어렵지 않을까, 30? 야 그 이하면 차라리 야간 대리운전을 뛸게. 이 시간까지 일해야 하는데... 시계는 토요일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성우가 엉엉 우는 시늉을 했고, 민현이 호쾌하게 웃었다.

 

두 사람을 족발을 먹으면서 회의를 시작했다. 그래도 옹성우는 상대가 황 대리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이 블랙 회사에 입사 결정을 했던 건 황민현이었는데, 성우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도 민현이었다. 성우야, 하하하, 있잖아. 내가 (아는 분의) (아는 분의) 아는 분 회사에 들어올래? 옹성우는 당시 학점이 2점대에 가까웠기 때문에, 민현의 제의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면접만 보면 된대. 거기서 알았어야 했지. 그게 바로 블랙의 기운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뭐, 최근까지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김 대표가 항상 헛다리를 짚는 것에 비해 회사는 튼튼하게 굴러갔는데, 의외로 하청받은 프로젝트도 탄탄했다. 김 대표의 연줄과 개인 재산이 빵빵하다는 소문도 돌았다. 김 대표, 알고 보면 재벌 3세래. 그 있잖아, H가. 거기 쪽이래. 이 회사는 그냥 자금 세탁줄이나 스펙 쌓기용이라는 소문도 있어.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김 대표가 회사를 농담 따먹기 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럼 황민현은, H사의 머나먼 친척 격인가. 옹 대리는 족발을 씹으면서 민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사실 황민현은 어딜 봐도 대기업 입사 내정자 같은 학점과 스펙을 쌓았는데, 대뜸 이 회사를 선택한 것이 신기하긴 했다.

 

“옹, 왜 그렇게 빤히 봐?”

“어? 그냥. 잘생겨서. 역시 잘생겼어, 황 대리.”

“너는 숨 쉬듯 그런 말을 하더라.”

“너 내가 김 대표한테 그런 말 하는 거 본 적 있어?”

 

너니까 하는 거지. 나는 늘 얼굴 뽑을 일 있을 땐 너 밖에 안 뽑잖아. 얘가 아직도 내 사랑을 의심하네. 옹 대리가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날리자 황민현이 다시 한번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성우야. 너는 정말 웃겨.

 

두 사람은 족발을 먹고 난 뒤 적당히 뒷정리를 한 후, 가장 편안한 소파 자리에 대충 뒹굴면서 구글 안드로이드와 앱스토어 1위부터 100위까지 게임을 훑어보았다. 이건 별로, 저건 별로, 시장 조사라는 명목으로 회사 에어컨 바람 쐬며 게임을 하고 있자니 약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어차피 자취방에 가도 외롭고 쓸쓸한 맨드라미 꽃 한 송이뿐인데. 족발 쓰레기를 정리하고 손을 씻고 돌아온 민현이 소파에 앉았다. 성우는 냉큼 민현의 허벅다리 위에 얼굴을 붙였다. 황 대리님. 떵우 무릎 베개 해주세요. 뭐, 성우야? 하하하. 이건 허벅지 베개잖아. 누가 보면 ‘저 미친 커퀴는 뭐야’라고 할 풍경이었지만, 둘에게는 일상이었다. 어디까지나 친구. 깔끔한 친구. 대학 시절부터 함께 해온 베스트 프렌드 절-친.

 

그랬다.

관계의 정의는 그렇게 멀끔했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

 

 

 

그러니까 그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일종의 사고가 일어났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황 대리와 옹 대리는 소파에서 드러누워 1~100위 인디 게임들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눈에 들었다.

 

“민현아, 민현아. 이거.”

 

꾸벅꾸벅 졸고 있던 민현을 성우가 다급하게 깨웠다. 이거 괜찮은 거 같지 않아? 민현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무슨 게임인데? 설명해 줘. 이게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인 거 같은데 보면 분량은 찔끔찔끔 주면서 HP를 사야 게임을 굴릴 수 있는 거야. 요즘 내 여사친들 프사가 다 얘네로 바뀌었다니까. 옹성우가 다급하게 자신의 카카오톡 창을 열어 여사친들의 프로필 메시지와 상태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종이남친 이00, 사랑해요 000. 이게 뭐야 으하하하. 황민현이 또다시 배를 붙잡고 정직하게 웃었다.

 

“근데, 이거 괜찮겠다. 프리사운드로 빼고 배경도 프리로 대충 메꿔가지고.”

 

한동안 시원하게 웃던 민현은 이내 웃음을 멈추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렇지? 캐디도 쉬울 것 같아. 잘생긴 애 아무나 본떠서 만들면 되잖아.”

“그럼 옹성우 너 그대로 붙여넣으면 되겠네.”

“응?”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잘생긴 게 너니까.”

“아이참. 황 대리는 참. 하하하...”

 

이번에는 옹성우가 웃을 차례였다.

 

“그런데 성우야. 이거 글 써야 되잖아. 시나리오는 누가 써?”

“아, 그렇네. 시나리오 너도 나도 못 쓰는데...”

 

대박적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떵우 슬퍼. 옹성우가 핸드폰을 다시 소파 위로 휙 던지면서 이번에는 회사 라꾸라꾸 위에 몸을 붙였다. 민현은 아직 소파 위에 앉아, 진지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갈량 님. 머리통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요. 이리 와서 같이 눕고 좀 쉬시죠. 라꾸라꾸에 누워있던 성우가 민현을 불렀지만 민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이 골몰하게 깊다는 증거였다.

 

“성우야. 좋은 생각 떠올랐어.”

“뭐?”

“남주는 너 하고, 여주는 나 하자.”

 

솔직히, 체험판 수준만 만들어서 보고서만 제출하면 될 건데 힘 빼지 말고. 설정만 기획해서 씬들만 구상해서 너가 남주인공 역 하고, 내가 여주인공 역 해서, 대충 연기해서 녹음 좀 딴 다음에 녹음 파일 받아적어서 시나리오 완성해서 끝내자. 옹성우가 이번에는 그 말을 듣고 기가 찬 듯이 웃었다. 야, 그게 어떻게 되냐. 우리 사이에 케미가 나오기는 해? 나는 연기 좀 되긴 하다만, 넌 연기도 못하잖아.

 

“못하긴 왜 못 해. 나 연기한 적 있어.”

“어디서?”

“너한테 말은 못 하지만, 여하튼 한 적 있어.”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증명을 해?”

“아이, 있다니까.”

 

나 잘한다니까. 민현이 거기까지 말하고, 소파에서 일어나 라꾸라꾸 침대 쪽으로 향했다. 뭐야, 왜. 성우가 코끝을 구기며 웃었다. 민현이 감정 연기라도 하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옹 대리님.”

“왜?”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황 대리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네?”

“사실 저, 옹 대리님하고 같이 남고 싶어서 일부러 이번 잔업 신청한 거예요.”

“민현아?”

“그런 얼굴로 보지 마시고요.”

 

정말 좋아해요, 대리님.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어요. 옹 대리님 얼굴, 정말 제 취향이에요. 어떻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렇게 잘생길 수 있어요? 민현이 수줍게 웃더니만,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말했다, 말해버렸어. 어떻게 하죠? 저 대리님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요. 민현이 작게 웅얼댔다. 빨갛게 달아오른 민현의 귓가가 보이자, 성우도 확 얼굴이 붉어졌다. 민현아, 저기. 어. 음? 성우는 지금 이 상황이 장난인지, 아니면 정말 황민현의 진심인지 읽을 겨를이 없어 말문이 막혔다. 토요일 오후 9시.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낮고 어두웠고, 에어컨 소음만이 정적을 메웠다. 

 

“성우야.”

 

민현이 성우의 이름을 불렀다. 서울 시민의 주말 야근을 모아 만든 야경이, 사무실 밖 창가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시계초침 소리가 달칵달칵 움직였다. 성우가 침을 삼켰다. 민현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우야. 다시 한 번 이름이 불렸다. 어, 응. 아니, 네. 성우가 빠르게 답하다가 혀를 씹었다. 아, 아익. 아파. 그 모습에 황민현이 푸스스하게 웃었다. 진지했던 분위기가 단숨에 부드러워졌다.

 

이것 봐. 

잘하잖아.


연기.

나 잘한다니까.

 

침묵을 깬 건, 민현이 먼저였다. 황민현이 제 얼굴을 가렸던 두 손가락을 까꿍 하듯 덜어내며 ‘연기 해본 적 있다니까’라고 웃었다. 휘어진 두 눈이 어른어른 붉었다. 민현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 성우는 달빛이 비치는 어두운 사무실에 앉아, 친구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진짜야, 아니면 거짓말이야? 민현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결국, 성우는 툭 튀어나온 질문을 입안으로 삼켰다. 어, 그렇네. 잘하네. 내가 못 알아봤네. 명배우를. 그렇게 매가리 없게 칭찬을 반복하고, 라꾸라꾸 침대를 털어 정리하고, 두 사람은 말없이 짐을 챙겨 나왔다.

 

간만의 퇴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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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500 회식 착장이 좋아서 썼어요... 약간 용두사미인 건 졸려서..ㅠ0ㅠ 정신 나면 더 이을지 여기서 끝낼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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