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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황] 완벽한 세계를 사랑하는 법 1

오늘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우리 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랍니다. 오래전 지구에는 [애증]이라는 마음이 존재했어요. 애증이 뭐냐고요? 쉽게 설명하면, 미움과 사랑이 뒤섞인 감정입니다. 누군가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가, 때로는 끝없이 슬퍼지고 아찔해지고, 상대가 너무 좋은 동시에 너무 미운 감정이랍니다. 어떤 존재를 몹시 귀하게 아껴서, 개인이 망가지기도 하는 마음이에요.

 

그런 감정이 왜 필요하냐고요? 글쎄요. 지금의 우리로선 알 수 없지요. 어쨌거나 과거 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애증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연인을 사랑해서 살해하기도 하고, 자녀를 사랑해서 동반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답니다. 놀라운 일이죠? 사랑이 늘 옳은 선택을 동반하는 건 아니었답니다. 보다 못한 신은, 자신의 피조물들을 위해 애증이라는 마음을 소거하기로 결정합니다. 신이 마지막 지팡이를 휘두르자, 세상이 암흑으로 가라앉았고. 그대로 천 년을 잠든 지구별 사람들은 깨어나 깨달았지요. 마음속에 애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이제 누군가를 구별할 때 좀 더 명확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어요. 아주 사랑하거나, 아주 미워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됐죠.

 

그래요, B군. 질문이 뭐죠? 우리 별에도 여전히 [애증]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요? 맞아요. 멋진 지적이에요. 최근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멸종된 줄 알았던 '애증'이 우리 안에 5~10% 정도 남아있다고 하네요. 신은 아예 감정을 소거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누구든 다시금 애증을 느낄 수 있게 세팅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채택된 학설은 아니지만 흥미롭죠. 돌연변이도 있습니다. 인류의 0.1%는 여전히 태생적으로 애증의 감정을 이해하며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들을 [과거인]이라고 부릅니다. 과거 세대의 유물을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죠. [과거인]과 반대되는 개념은 [현대인]이에요. 대부분의 현대인은 사랑과 미움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 당연한 역사를 왜 꺼내는지,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도대체 신은 태초의 우리에게 미움과 사랑을 왜 공존하게 했으며, 그리고 결국 그 마음을 분리시켜 앗아갔는지. 그런데도 왜 여전히 돌연변이의 존재들이 우리 옆에서 살아가는지. 오늘부터 우리는 16주간 이 내용에 대해 토론할 거예요. 우리가 이미 잊어버린 애증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왜 신이 우리에게 이 감정을 앗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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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목소리의 노교수는, 개강 첫날부터 파격적인 과제를 제시했다. 학계에서 천재로 알려진 노교수였기 때문에, 교양 수업이라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선배들의 말이 옳았다. 알면서도 이 수업을 선택한 건 민현이었다. '그래도 교수님 강의는 들어보는 게 좋아. 마음에 풍성해져' 민현에게 선배 Q가 그런 말을 꺼냈고, 민현은 그 조언에 휩쓸려 이번 학기 첫 번째 수강신청을 노교수의 강의로 정했다. 어려운 과제를 예상하긴 했지만, [신의 선택과 지구의 역사]를 정면으로 반박해보라는 과제가 나올 줄이야. 애초에 애증을 경험해보지 못한 존재들이, 애정과 애증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불만을 웅얼거렸지만 태생적으로 긍정성이 세팅된 [현대인]이었다. 과제가 시험보다는 나을 거야. 입 밖으로 꺼낸 말들이 울렁이며 퍼져나갔다. 민현은 수업을 계속 듣겠다는 선택지와, 수업을 드롭한다는 선택지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다. 저희, 이제 같은 팀인가요? 누군가가 민현의 옷자락을 톡톡 두드렸다. 민현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살폈다. 이름이 뭐예요?

 

“배진영이요.”

“신입생이에요?”

“네.”

 

신입생이 듣기엔 어려운 과목일 텐데. 민현은 진영을 바라보며 나긋하게 중얼거렸다. 실제로 수업 수강생은 대부분 졸업반에 가까웠다. 이 수업은 졸업하기 직전, 제대로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학생들이 듣는 강의로 유명했다. 저가, 늦잠을 자가지구... 수업 시간표를 착각해서요... 진영이 부끄럽다는 듯 말을 흘렸다. 민현이 하하 웃으며 답했다. 뭘 그런 걸로 부끄러워해요. 그럴 수도 있죠. 진영과 대화하면서 민현은 어느새, 수업을 드롭하겠다는 선택지를 잊어버렸다.

 

저는 황민현이라고 해요. 진영 씨보다 두 학번이 많고. 잘생긴 후배님하고 함께하게 되니 기분이 좋네요. 민현이 산뜻하게 웃으며 진영에게 손을 내밀었고, 진영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 그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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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교수의 첫 수업은 3시간 중 30분을 채우지 않고 마무리됐다.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놀라는 뜻은 아니었다. 교수는 '파트너와 함께 차라도 마시며, 편안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라'고 조언했다. 파트너와 친해져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소재는 '애증'이지만 표현 방식은 자유이기 때문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감정에 접근해보세요. 영화도 보고, 책도 같이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눠보세요. 애증에 관한 영화 리스트는 공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사랑의 얼굴]도 추천해요. 아주 좋은 영화랍니다.

 

“우리 영화 보러 갈래요?”

 

학생들이 물밀 듯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학식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함께 차를 마시자며 약속을 잡는 성실한 학생들도 있었다. 민현은 시계를 살폈다. 어차피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 학생회 회의는 저녁 이후에 잡혀 있었다. 진영이 거절한다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혼자라도 영화를 보러갈 셈이었다.

 

“사랑의 얼굴이요?”

“네. 사랑의 얼굴. 마침 시간이 괜찮아서요.”

 

진영은 잠시 고민하는 낯빛을 하더니,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영화는 내가 살 테니까 진영 씨가 나초 사요. 진영이 그 말에 조금 웃었다. 팝콘 말고 나초요? 나초 좋아하시나 봐요?

 

“네, 전 늘 나초에 자몽에이드예요.”

 

황민현은 의기양양하다는 표정으로 진영을 이끌었다. 신입생이면 영화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죠? 내가 알려줄게요. 나만 믿고 따라 와요. 진영은 민현의 말에 그의 등을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민현은 진영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우리 학교는 어떻게 입학하게 됐어요? 진영씨도 본토 출생이에요? 혹시 위성 쪽에서 왔어요? 나는 수성 쪽 근처 위성에서 왔는데. 지구별은 역시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놀랐어요.

 

“저는 본토 출신이고, 대학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그렇구나. 좋겠어요. 진영 씨 머리카락 색이 검어서 본토 출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검은 머리는 희귀하잖아요. 민현은 자신의 연갈색 빛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진영 씨는 가족들과 함께 사니까 좋겠어요. 저는 가족들이 너무 멀리 있어가지고 보고 싶더라고요.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인 만큼, 특수 통신망을 이용해도 연락하려면 한참이 걸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대학은 대부분 본토 부근에 몰려 있으니, 위성 출신들이 감수해야죠. 덕분에 수업은 열심히 듣고 있어요. 하나라도 놓치면 아까운 것 같아서. 쉼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민현의 이야기를 진영은 잠자코 들어주었다.

 

영화관은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골목과 골목 사이를 복잡하게 지나쳐야 했기 때문에 길이 어려웠다. 요즘은 거진 개인 폰으로 어디서나 영화관을 구현할 수 있으니까, 영화관에 방문하는 사람도 많진 않죠. 영화관은 민현의 말처럼 꽤 오래된 느낌이 났고, 상영관을 찾는 사람도 적어 보였다. '사랑의 얼굴 2명이요' 민현이 AI 시스템에게 말을 걸었다. 자리에 착석하신 후 10분 뒤에 영화가 시작됩니다. AI 시스템이 민현의 손목 바코드를 읽은 뒤,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나 영화 보는 거 정말 오랜만이에요.”

“저두요.”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흠, 나쁘진 않아요.”

“나쁘지 않아요? 신기한 대답이네요.”

 

[현대인]들에게 '나쁘지 않다'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었다. 사랑과 증오를 완벽하게 분리한 신의 선택 이후로, 현대인들은 자연스럽게 호불호를 명확하게 가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진영이 민현에게 무어라 답하려는 순간, 영화관의 스크린이 펼쳐졌다. 진영이 버튼을 눌러 나초칩과 자몽에이드, 그리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사랑의 얼굴'은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오래된 연인 사이 새로운 인물이 끼어들고, 그 인물을 사랑하게 되며 동시에 혐오를 느끼는 주인공의 이야기. 주인공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원래 연인이었던 B와 관계 속에 끼어든 새로운 인물 C를 증오하는 동시에 사랑한다. 현대인에게라면 찾아보기 어려운 연애 스토리였다. ‘좋아해. 좋아해서 죽을 것 같아.’ 클라이막스에 등장한 주인공의 대사에 민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애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민현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대인]이었다. 사랑해서 연애를 하다가도, 상황이 맞지 않으면 깔끔하게 헤어지곤 했다. '마음이 식었다'도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마음이 식었다는 부분’에 심하게 화를 내거나 상처를 입는 연인은 없었다. 마음이 식었다면 어쩔 수 없지. 속상하지만 잘 지내. 현대인의 연애는 이별조차 깔끔했다. 주인공의 마음이 식었다면, 새로운 인물 C와 연애하면 되는 거 아닐까? B도 조금은 속상할 테지만, 결국엔 주인공을 놓아주게 될 텐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민현은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다. 불쑥 튀어나온 하품에 입을 가렸다. 그러나 옆자리 배진영은, 생각보다 영화에 몰입한 듯 보였다. 주인공이 B와 C를 사이에 두고 '이제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엉엉 울 때, 배진영은 조금 울 것 같은 눈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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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실 돌연변이예요.”

 

배진영은 영화를 보고 나와, 문득 그렇게 고백했다. 민현이 뒤를 돌아 진영과 시선을 맞췄다. 돌연변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돌연변이 있잖아요. 애증 감정이 사라지지 않은 인류의 0.1%. 그것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심리 치료 센터도 다니고 있어요.”

 

아, 물론 그것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구요. 그냥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통로가 하나 더 있다고 해야 하나. 진영은 끙끙거리면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당황스러운 건 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업 시간표 때문에 아무렇게나 선택한 과목이 하필이면 [애증]과 관련한 소재라니. 게다가 16주 동안 그걸 탐구하는 게 목표라니. 차라리 수업 변경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증을 느낄 수 있는 돌연변이가 지구 역사상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현대인들의 기질이 워낙 순한 편이라 따돌려진 경험은 없지만, 연쇄 살인 등의 잔혹 범죄가 [과거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편견은 은연 중에 존재했다. 진영은 그 덕에, 다른 사람들에게 섯불리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말은, 해둬야 할 거 같아서요.”

 

싫으시면 파트너 바꾸셔도 되고, 저가 수업 바꿔도 괜찮아요. 진영은 사뭇 비장한 얼굴을 했다.

 

“그럼 진영 씨는, 저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음. 저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아주 약간은요.”

“그렇구나. 잘 됐다. 우리 과제는 남들보다 훨씬 금방 끝나겠어요!”

 

민현은 진심으로 기쁘다는 표정을 했다. 민현이 ‘파트너 바꿔도 돼요?’라고 물어올 것이라 예상했던 배진영은 뜻밖의 천진한 답변에 그의 얼굴을 말갛게 바라보았다. 저기요. 애증이라는 감정이 강력범죄의 원인일 수 있다는 신문 기사 안 보셨어요? 그런데 정말 괜찮다는 거예요? 과거인인 진영은, 현대인인 민현의 손끝을 톡톡 두드리며 빠르게 설명했다.

 

“네, 정말 괜찮은데요?”

 

어차피 진영 씨가 절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예요. 문제가 되는 건 사랑을 할 때잖아요. 사랑하지 않으면, ‘애증’을 느낄 일도 없고. 어차피 미움이라는 감정은 현대인들도 가지고 있는 건데 뭐가 그리 걱정이에요. 민현이 ‘하하’ 하고 크게 웃었고, 진영은 그 웃음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 사람, 정말 [현대인]답다.

 

“...그래요. 그럼 말 놔요. 형이 더 형이잖아요.”

 

진영이 남길 수 있는 말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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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에게도 몇 번의 연애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감각의 통로가 남들보다 예민한 진영에게 현대인과의 연애는 한없이 결이 다르기만 했다. ‘나는 왜 남들과 다른 거예요? 나는 이제 사랑이란 걸 할 수 없나요? 나는 그 애들의 사랑을 이해하기 너무 힘들어요.’ 세 번째 연애를 자기 손으로 끝내고 돌아온 진영은 펑펑 울었다. 나는 A를 좋아했지만, A는 내가 자기 때문에 감정이 들끓는 건 이해할 수 없대요. 사랑은 늘 평온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A는 내가 이상하다고 말했어요. 우는 진영을 끌어안고 아버지는 나지막이 위로했다.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나 혼자 다르다는 건 슬픔이기도 해. 괜찮아. 하지만 진영아. 배울 수 있을 거야. 너도 남들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거야.

 

남들과 같아질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감정의 돌연변이를 인정받았을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센터 선생님도 진영을 그렇게 위로하곤 했다. 괜찮아. 너는 같아질 거야. 너는 우리와, 다르지 않게 행동하게 될 거야. 그러나 그 말들은, 누구를 위한 주문일까. 누구를 위한 위로일까. 타고난 기질을 억지로 바꿔 가는 것이 불행이라는 사실을, 진영 주변의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진영은 차라리 침묵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편이 모두에게 편안했기 때문이다. 조용해진 진영을 통해 부모는 위안을 얻었고, 센터 선생님은 성과를 얻었다. 사랑하지 말고, 사랑받지 말고, 그렇게 조용히, 돌연변이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열아홉이었다.

 

“진영이의 감정을 먼저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어.”

 

두 사람은 카페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과제 논의를 시작했다. 민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사실 마음으로 와닿지는 않아. 민현은 [애증]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했다. 좋아서 괴로울 수 있다는 거지? 연애를 하면서도, 너무 좋아서 막 서러워지고 그런 감정이 생겨난다는 거잖아? 이 사람과 잘 될 수 있을까 두려워하기도 하고 헤어질 때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 힘들기도 하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가능하다는 거잖아.

 

“네 연애사는 어땠어?”

“...솔직히 좋지 않았죠.”

“왜?”

 

[현대인]들이란 섬세함이 부족했다. 감정의 반 토막을 덜컥 잘라 내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인들은 속마음을 숨기는 법이 없었고, 모든 상황에서 대부분 솔직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했다. 이러니까 답답하다는 건데. [과거인]인 진영은 쓰게 웃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대인이 전부인 세상에서, 과거인의 삶은 멸종된 유물처럼 멀기만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게 연애에서 장벽이 돼?”

“음. 형은 저 영화가 하나도 이해가 안 가죠?”

“그렇지.”

“좋아해도, 사람이 서로 이해할 수 없으면 사귀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매번 차였어요. 진영은 갑작스럽게 서러워진 듯 고개를 푹 파묻고 책상 위에 오른뺨을 붙였다.

 

"그랬어? 힘들었겠다.”

“형, 지금 그게 무슨 느낌인지도 모르고 위로하는 거죠. 그러지 마요.”

“아니, 그래도 진영이는 잘생겼으니까.”

“...그게 뭐예요.”

“아니 정말 진영이는 잘생겼어.”

 

그 말에 진영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래서 현대인들은 안 돼. 섬세함이라는 게 부족하다. 과거인은 너희보다 센티멘탈하다는 걸 헤아려달라고.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취급주의 표시라도 붙여야 하나. 놀리지 말아요, 형. 진영이 화끈거리는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래도,

잘생긴 건 잘생긴 거잖아.

 

민현은 여전히 호쾌하게 웃고 있었다.

 

 

 

/

 

 

 

망했다.

망했어.

 

무신경한 현대인과의 네 번째 연애는 절대 할 수 없다고 믿었는데. 황민현도 웃으며 그랬잖아.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이미 문제 상황은 시작되고 있었다. 진영은 어느새 자신이 민현에게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던 자신이 카페에 앉아 자몽에이드 따위를 시키고 있을 때, 영화관에 혼자 앉아 나초칩을 고르고 있을 때, 자기 전 허여멀건 민현의 얼굴이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날 때, ‘망했어 배진영. 이번 생은 다 틀렸어’라고 한숨짓곤 했다.

 

문자 그대로 망할 연애였다. 지금 망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곧 망할 짝사랑. 노교수는 오랜만에 강의실에 앉아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어쩌면 과거인과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대인과 과거인의 연애는 어려운 부분이 많죠. 서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다르니까요. 현대인에게 과거인은 아예 다른 종처럼 느껴질 거예요. 같은 모습을 하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지만, 감정의 일부분이 없고 있다는 건 연애에서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요. 학생. 좋은 질문이에요. 연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렇게 공부까지 하며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나는 연애가 젊은 시절에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의 집합체라고 봅니다. 현대인인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많은 것들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극복하며 살아갈 거예요. 온유하고 완벽한 평온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겠죠. 아마 연애는, 지금 시절의 연애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거예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불안감을, 서러움을 전혀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조금 아쉽지 않을까요? 그래요. 얼굴에 쓰여 있네요. 왜 그런 마음을 굳이 경험해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들이네요. 맞아요.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나이가 많이 먹었으니까, 젊은 여러분이 하나라도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해주길 바랄 뿐이에요. 바다를 알고 사는 것과, 바다가 아예 없다고 믿고 사는 건 다른 이야기거든요. 그냥, 늙은이의 뻔한 잔소리 같은 거죠. 그러니까 이 과제는 PASS/FAIL로 결정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리해와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이 과제는 누구에게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수업은 여기까지.

 

교수는 진영에게 찡긋 눈을 맞추었다. ‘왜 그런 감정을 굳이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건’ 아마도 진영이었을 것이다. 교수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 중 누가 과거인인지 사전정보를 제공받는다. 인권 침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애증 관련 사건 사고가 이어진 이후에는 과거인들이 양보하는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진영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였다.

 

진영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황민현은, 그날도 말갛게 웃으며 진영을 찾았다. 두 사람은 과제를 하면서 부쩍 친해진 상태였다. 서로의 자취방이나 본가에 놀러 가 피자를 나눠 먹기도 했고, 같이 영화관에서 두 편의 영화를 더 보기도 했다. 이번에는 민현이 좋아하는, 화려한 히어로 무비를 봤다. 노래방에 가서 콘서트를 하는 기분으로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생각보다 노래 감성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민현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진영아, 너 옛날 노래 많이 아네. 모를 줄 알았는데’라며 감탄했다.

 

“우리 이제 정말 친해진 것 같지.”

 

나는 너무 좋아. 진영이랑 친해져서 재밌고 좋아. 진영이는 귀엽구. 조잘거리는 그 입술이 야속한 건, 배진영 뿐이었다.

 

“형이 더 귀여워요.”

 

불퉁하게 튀어나온 배진영의 아랫입술을 바라보며 민현은 또다시 ‘귀여워’라고 외쳤다. 아니, 저기요. 저는 형이 더 귀엽다니까. 이래서 자기 얘기만 맘껏 해대는 현대인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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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눈새wer 황민현과 고민하는 직진남 배진영을 보고 싶었어요... 여러 영상들에서 쾌남처럼 하하하 웃는 민현이가 너무 귀여워가지구 ㅠ0ㅠ SF물이라기 보다는 메르헨처럼 읽어주세요 판타지 어려워요...>_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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