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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년] Forever Young and Beautiful

나는 영원을 살아

민현아, 나는 영원을 살아.

 

4년째 열애 중인 옹성우는 문득 그런 말을 꺼냈다. 커피와 자몽에이드를 시켜 마주 앉아, 케이크를 먹고 있던 상황이었다. 민현은 입에 묻은 케이크 부스러기를 닦고, 연인의 얼굴을 덤덤하게 노려봤다. 미안한데 성우야.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줄래.

 

"나는 영원을 살아."

 

농담하는 거 아니야. 쉽사리 믿진 못하겠지만. 성우는 빠르게 뒷말을 이어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성우는, 혼나는 아이처럼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나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민현이 너한테 이런거짓말을 왜 하겠어. 나는 정말로, 영원을 살아. 뱀파이어나 인체 개조 뭐 이런 종류는 아니고, 눈을 떠보니까 어느 새부터 내가 영원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처음에는 나도 정말 놀랐어. 칼에 맞아 사망했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사건 장소에서 그대로 눈을 떴거든. 두세 번쯤 죽고 나니까, 내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원리 같은 건 나도 몰라. 물어보지 마.

 

'만약 같은 건 없어'가 삶의 나침반이던 민현이었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민현 앞에, 오랜 연인의 고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를 만큼 무거웠다. 장난기 심한 성우가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라 믿고 싶었지만, 성우는 '진짜야... 믿어 줘'라는 말만 반복했다. 처음에는 민현이 너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 몇 년 사귀다가, 언젠가 헤어지겠거니. 그런 마음이어서 이야기를 못 했어. 그런데 너를 만나면 만날수록 더 좋아져서. 어제보다 네가 더 좋아져서. 이제는 너한테 솔직하게 말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아. 성우가 민현의 손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옹성우는 여전히 로맨틱했다.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해? 헤어져야 해?"

"아냐. 그러자고 꺼낸 말 아냐. 내가 널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건 알지. 성우는 날 너무 좋아하지."

 

그럼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뭐야?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해? 현실주의자인 민현은, 가장 먼저 그것들이 의문이었다. 내 연인이 판타지 소설처럼 영원을 산다고 치자. 그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든, 성우를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할 종류의 이야기든, 혹은 현실이든.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행해야 할 선택지는 무엇일까? 내 연인이 기이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헤어진다? 혹은 그냥, 평소와 같이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성우를 꾀어 지금 당장 상담 치료를 시작한다?

 

"음, 지금 당장 달라질 건 없는데. 그냥 사귀면 돼..."

"그게 뭐야."

 

민현이 조금 웃었다. 파격적인 고백의 결론 치곤 싱거운 결말이었다.

 

"지금은 상관없지만, 10년쯤 지나면 우리 사이에 꽤 차이가 날거야. 나는 늙지 않더라고. 이 나잇대 그대로 쭉, 네 곁에 남아있게 될 거야."

"그렇구나. 그럼 나 속상하겠다. 나만 쭈글쭈글해질 거 아냐."

 

피부 관리 열심히 해야겠네. 민현은 성우의 손가락을 끌어당겨 자신의 뺨을 만져보게 했다. 피부 탄력부터 달라질 텐데. 큰일이네. 

 

"황민현. 너 내 말 안 믿고 있지."

"아냐, 믿어."

"오늘 집에 들어가자마자 정신병원 리스트 알아볼 거지?"

"아냐. 진짜 믿어."

 

성우 말을 내가 안 믿고 어떻게 살아? 성우는 성우인데. 민현이 주변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성우의 새끼손가락에 가볍게 키스했다. 성우는 그런 연인이 사랑스럽다는 듯, 민현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4년의 연애 기간이 무색하게, 그들은 여전히 열렬하고 다정했다.

 

"옹성우는 영원을 살아서 체력이 빈약한 거야?"

"아니. 그건 타고난 듯."

"뭐야, 그럼 영생이 좋은 게 하나도 없잖아. 너 게임도 못 하고."

 

야, 게임이랑 체력이랑 영생이랑 무슨 상관이야. 이 미모가 끝없이 유지된다는 점이 제일 강점이지. 황민현은 좋겠다. 너 내 얼굴 좋아하잖아. 성우가 어느새 자리를 옮겨 민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연인의 어깨에 살짝 기대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야, 민현아. 나 사실 너무 불안해. 넌 반쯤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혹은 내가 미쳐버렸다고 믿겠지만. 나는 내가 혼자 남겨지는 밤들이 너무 무서워. 너는 언젠가 떠나버릴 텐데, 너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질 텐데, 나는. 나는 고장난 시계처럼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거야.

 

"...성우야, 울어?"

 

안 울어. 가오 안 잡히게. 실제로 성우는 울고 있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민현은 집에 가자마자 상담치료로 유명한 선생님들 자료를 조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진지해진 성우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성우의 옆모습은, 거짓조차 진실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옆모습에 끌려, 동성과의 연애를 시작한 민현이었다. 연애는 여자랑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성우는 늘 민현에게 처음이었고, 새로운 감각들을 알려주는 존재였다. 그가 알려준 세상은 자신의 예상치와는 전혀 달라, 민현은 그 경험들이 신선하면서도 낯설고, 불안하면서도 동시에 설렜다.


그래서일까. 남들이 말했다면 당장 병원에 연락부터 돌렸을 파격적인 고백조차, 민현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연인의 말을 전부 신뢰한 것은 아니었지만, 4년간 사귀면서 옹성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신실하고, 열렬했으며,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여름밤의 공기는 눅눅했고, 테라스에서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담배 피울래? 민현이 성우의 어깨를 두드렸고, 성우는 거절했다. 아니, 너 담배 냄새 싫어하잖아.

 

"담배라도 피워야 할 것 같은 얼굴이라서."

 

위로해주고 싶으면 뽀뽀해 줘. 떵우 뽀뽀 좋아해. 성우가 대놓고 얼굴을 들이댔고, 민현은 주변 눈치를 보면서 성우를 밀어냈다. 여기선 싫어. 집에 가서 하자.

 

"집에 가면 뽀뽀로 안 끝날 텐데?"

"야, 너는. 너는 말을 뭐 그렇게 대놓고 해."

"아, 미안. 민현이는 은근히 분위기 잡는 거 좋아하는데."

 

그건 그렇지. 오래 사귀기는 했다. 민현이 성우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속삭였다. 여름밤의 세상은 아름다워고, 폭염에도 여전히 연인의 옆모습은 사랑스러웠다. 민현은 어쩐지 '될 대로 되라'라는 기분이 들었다. 옹성우가 영생을 살면 뭐가 어떠랴. 잘생긴 얼굴이 끝없이 유지된다는데, 인류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 하나 늘었네. 성우가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앞으로 차차 천천히 확인할 수 있겠지. 어차피 우리는 당분간, 지금처럼 쭉 함께일 테니까. 

 

있잖아, 그러면. 민현이 고개를 돌려 성우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도, 너는 여전히 이 스물넷에 머물러 있는 거야? 그럼 우리 연애는 어떻게 되는 거야? 성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실, 잘 모르겠어. 나 그렇게 오래 연애해본 적은 없어서. 그냥 짧게 여러 사람만 만났거든. 민현이 그 말에 성우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두드렸다. 이야 옹성우, 이게 더 파격 발언인데. 너 연애도 정말 많이 해봤겠다? 나는 네가 거의 처음에 가까웠는데. 뭔가 서운한데?

 

"그게 뭐가 서운해... 나 이번 세기 들어서는 민현이 너가 처음이야."

 

나도 연애 정말 안 한다고. 판타지 영화도 안 읽었어? 영생을 사는 존재들에게 연애는, 세계 최고 약점같은 거야. 나 같은 사람은 기억력도 좋다고. 네가 사라지면 나는 계속 울거야. 100년을 울고 1000년을 울어도, 그런데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계속 울고만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황민현. 넌 고마운 줄 알아. 그래도 내가 너랑 연애를 시작했잖아.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하는 거라고.

 

"그렇구나. 그거 정말 영광이네."

"그럼~ 영광인 줄 알고 살아."

"성우야, 나도 너를 정말 좋아해."

"알아."

"이럴 땐 나도 라고 하는 거야."

 

민현아, 나는 원래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잖아. 뽀뽀해도 돼? 성우가 억지를 부리며 민현의 입술을 찾았다. 새벽을 넘긴 여름밤은 덥고 후덥지근했다. 입술에 와 닿는 성우의 감촉도, 8월처럼 무더웠다. 가벼운 뽀뽀로 끝날 줄 알았던 키스는, 진득하게 이어졌다. 치열과 치열이 부딪혔고, 입술과 입술이 뒤섞였다. 서로의 타액을 핥아대다가 성우가 낮은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민현아 어떻게 하지? 나 일어서기 힘들어졌다. 너는 왜 이렇게, 잘생기고 예쁘고 좋아. 다 좋아. 그러니까 내가 영생을 살아도,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네가 할아버지가 되면, 내가 먼 친척 손자인 척할게. 만약에 결혼하고 싶어지면, 아이를 낳고 싶어지면, 그때는 잠깐 떨어져 있어도 괜찮아. 내가 너무 많이 욕심내진 않을게. 나는 시간이 많으니까, 꽤 오랫동안 너를 기다릴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뒤 성우는 울기 시작했다. 민현은 연인의 동그랗게 굽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토닥였다. 성우야, 만약 같은 건 없다니까. 지금부터 불안해하면 어떻게 해. 민현은 사실, 성우의 울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성우가 느끼는 불안감의 한 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민현은 오늘의 자신이 성우를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성우야 울지 마. 영원이 너의 불행이라면, 나도 같이 힘낼 테니까. 뭘 힘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낼 테니까.

 

성우는 한참을 울고 눈과 코가 빨개진 상태에서 민현의 어깨에 기대앉았다. 너 이런 분위기에서도 여전히, 정신병원 리스트 고민할 거지? 성우가 농담을 던졌고 민현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이젠 정말 안 그럴게. 성우가 하는 말은 다 믿어야지. 민현은 성우의 얼굴을 살피며, 제 머릿속에 떠오른 솔직한 감정을 지워내기로 했다. 성우야, 어차피 모든 연인들에게 '영원'은 꿈 같이 먼 이야기잖아. 네가 늙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실수를 해서 헤어질 수도 있는 일이잖아. 모든 연인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을 속삭이지만, 사랑의 영속성은 지나치게 짧았고 모든 연인들은 전애인 따위의 이름으로 역할을 재정비했다.

 

그러니까 우리.

 

"그냥 지금 잘 사랑하고."

"-하고?"

"영원은 십 년 뒤에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그때 내 얼굴이 너무 쭈글쭈글해져서 성우가 차버릴지도 몰라. 성우가 정말 늙지 않는다면 말이야. 민현의 말에 성우가 '너 또 그런다. 나 진짜 안 늙는다니까. 이 얼굴로 영생을 살아왔다니까'라고 꽃받침 포즈를 하며 까르르 웃었다. 카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건 성우가 먼저였다. 민현아 가자. 너무 늦었다. 내일 스케줄 생각해야지. 운전해서 데려다줄게.

 

"오, 옹성우. 운전도 해?"

"야. 내가, 못하는 게 어딨어"

 

성우는 의기양양하게 주머니에서 차키를 빼 들었다. 연인의 옆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민현은 잠시 졸았다. 꿈속의 자신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고, 성우는 여전히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휠체어를 끌고 있었다. 다정하면서도 더없이 끔찍한 미래의 풍경. 그 풍경이 진짜라면, 나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너를 보낼 수 있을까. 너를 위해 젊고 아름다운 다른 연인을 찾아줘야 하는 걸까. 그러나 확실한 건, 민현은 지금 제 곁에 있는 연인의 온기를 놓아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의 과제는 내일의 나에게. 민현은 그대로 유리창에 기대 잠에 빠져들었다. 귓가에서 낮게, 성우의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여름밤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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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앤 화보
씨이앤 화보

워너원 노래 중에는 유독, '영원'을 상징하는 가사들이 참 많아요. 끝이 정해져있다는 그룹 특성 때문이겠죠 ㅠ.ㅠ 끝이 있어도 괜찮아. 그럼에도 영원을 함께 상상해 줘. 이런 종류의 호소를 연인에게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옹년의 느낌들을 꽉꽉 채우다 보니 분량이 길어졌네요. 읽어주시고 흔적도 남겨주신 모든 분들 너무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늘 혼덕질 위주로 달렸기 때문에, 누군가 반응해주신다는 부분이 이렇게 신기하고 고마울 수 없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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