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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원] 나는 왜 황민현에 입덕했나

늦덕의 자기성찰기, 950809를 기념하며

만약 주변 누군가가 '나 지금 워너원 입덕하려고'라고 말한다면 '걔네 활동기 얼마 안 남았잖아'라고 답했을 것이다. 혐생은 바쁘고 할 일은 많고, 덕질할 시간에 잠이라도 한숨 더 자는 게 낫겠지만. 입덕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이성적으로 이뤄지나. 덕통사고는 늘 갑작스럽게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법이다. 내가 rps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팬픽을 비롯해 2차 문화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는데...


입덕부정기가 꽤 길었던 편이다. 도저히 덕질할 시간이 없었기에, 스며드는 마음을 밀어내려 부던히 애썼다. 워너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해외투어 시작 초기였으니, 정말 늦어도 이렇게 늦을 수 없다. 워너원 팬들이 '해투 반대야 여권 뺏자 ㅠㅠㅠ'라고 울어댈 때, 머글러였던 나는 '해투가 왜...? KBS 해피투게더 나오면 얼굴 보고 좋은 거 아닌가?'라고 고민하곤 했다. 그 [해투]가 [해피투게더]가 아니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심지어 나는 프듀2를 보지도 않았다. 프듀1을 짧게 덕질했는데 - 당시 최애픽은 세정이, 지금도 좋아해요- 처음으로 갤질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처음 해본 갤질은 문화컬쳐쇼크가 너무 컸다ㅜㅜ. 프듀라는 프로그램 특성상, 내 최애의 순위를 높여 데뷔시켜줘야 한다는 마음은 백분 이해하지만. 도처에 존재하는 지나친 불편함과 까칠함들이 괴로웠다. 행복하려고 사랑하려고 하는 덕질인데, 본체를 앓기보단 본체 순위를 높이기 위해 노동에 투자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워너원을 바라보면 아이오아이가 보였다. 아이오아이가 해체할 당시, 세정이가 엉엉 우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같이 찢어지곤 했다. 워너원을 좋아하게 된다면 아마 12월의 나는 몹시도 우울해지겠지.



그러나 사랑이 그렇게 이성적인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면, 덕통사고라는 단어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프듀2를 돌아보지도 않으려고 애썼지만, 우연한 기회에 [네버] 무대 영상을 만나게 됐다. 주변에서 누군가(아이돌팬 아니고 머글임) '네버 무대가 그렇게 쩐다'고 추천해주길래, 무대 영상을 보게 됐다. 그렇게 나는 네버 센터, 황민현을....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그대로 맞닥뜨렸던 것이다. 네버 황민현이 등장한 순간 '끝났네'라고 외치던 이름 모를 연습생의 마음은 내 마음과 같았다. 아, 끝났다. 나는 이제 망했다. 친구는 왜 나에게 경고하지 않았을까? 민현이 얼굴이 이렇게 유해하다는 것을... 말 그대로 (내 마음에) 유해한 무대였다.


네버 무대 이후 프듀2에 관심이 생겨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프듀2 재방송이 TV 무료 다시보기가 가능했기, '설마 내가 지금 와서 입덕을 하겠어 ㅋ 잘생긴 민현이나 찾아보자 ㅋ'라는 마음으로 1화부터 감상을 시작했다. 황민현을 앓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듀였기 때문에, 초반부는 영 재미가 없었다. 민현이 분량이 넘나 나노 단위였기 때문에...


황제님 입장하십니다
황제님 입장하십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생활 BGM처럼 프듀를 보다가, 황민현 입덕을 결정짓게 만든 장면이 있다. 바로 [네버] 센터 논의 회의 장면이다. 당시 연습생들은 '네버' 곡에 남아있어야 하는 연습생과, 방출해야 하는 연습생을 자체 투표로 결정했다. 자신을 비롯해 타 연습생들에게 순위를 매겨, 1등부터의 점수를 합산해 잔류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모든 연습생이 자신의 이름을 1순위에 올렸고, 나 역시 그것이 당연하다 믿었다.


민현이에게 치인 장면
민현이에게 치인 장면


그러나 황민현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은 2위에 올리고 개인 연습생 김재환을 1위에 적어 냈다. '자신을 살리고 싶다'는 욕망보다 '누가 팀 무대의 완성도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앞세운 듯 보였다. 공동의 목표를 개인의 욕망보다 우선한다는 명제는, 쉬워보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1표 차이로 운명이 갈리는 프듀 세계관의 연습생들이라면, 자기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황민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황민현이 호구처럼 무해하게만 굴었다면, 나는 그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민현은 네버 센터 자리를 노리고 있었고, 네버 무대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센터를 노리면서도 동시에 자기 이름을 김재환 아래에 둘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꽤 충격적인 캐릭터성이었다. 이 사람의 욕심은 참 단정하구나.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욕망을 표출하는 방법이 참 산뜻하구나. 팀에서 필요한 자신의 순위가 2위라니, 자기객관화도 굉장히 명확한 사람이구나. 


후에 본격적 덕질을 시작하면서 황민현의 다정한 개인주의자 모먼트를 만나게 되고, 그런 부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트렌디한 얼굴 만큼이나 트렌디한 성격이었다. 다정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니. 동생들을 그렇게 숨쉬듯 챙기고 치대면서, 누구보다 거절을 잘하는 성격이라니. 다른 사람들한테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 라고 다정하게 챙겨주면서 '나는 괜찮아. 배고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거기에다 잘 울지 않는다는 정보까지 ㅠㅠ 2018년 베스트셀러 '개인주의자 선언'이 사람으로 환생하면 황민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씹덕터지는 민현이 ㅠㅠ
씹덕터지는 민현이 ㅠㅠ

물론 내가 황민현의 실친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그의 실제 성격이나 진짜 마음까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다만 내가 TV 너머 느낀 황민현의 성격은 '본의 아니게 구설수에 휘말릴 순 있어도, 자기 스스로 팬들이 차려준 밥상을 걷어찰 성격은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이 사람의 진짜 본질까지 내가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팬들에게 환상을 파는 것에 소홀해지진 않겠구나. 이 사람 덕질을 하면 내 마음이 상쾌하겠구나. 내가 아이돌을 파는 이유는 유사연애도 아니고 유사육아도 아니고, 프린세스 메이커도 아니었다. 그저 예쁜 존재가, 반짝이는 공간에서 마음껏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같이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그것을 위해 지갑을 열고, 스밍 따위의 노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무언가를 투자했을 때 찰떡같이 받아먹는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기분? 그런 아이돌에게 투자하고 싶다는 기분? 일상생활에서야 그럴 수 없지만(실제 육아는 아이의 부족함을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어른으로서 포용해줘야 하지만) 덕질까지 그러고 싶진 않아... 

셔츠랑 코트 너무 사랑해 ㅠㅠ
셔츠랑 코트 너무 사랑해 ㅠㅠ

황민현은 자신의 사복 패션과 흡사한 사람이었다. 황민현의 사복 패션은 지나치게 깔끔해보여서 '패셔니스타' 느낌을 주진 않지만, 사실 자신에게 가장 맞는 색과 선의 깔끔한 착장을 고른다는 건 쉽지 않다. 황민현은 그런 쉽지 않은 일들을 아주 당연하다는 얼굴로 해내곤 했다. 팬을 사랑한다는 건 아이돌의 기본 철칙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그 기본적 의무조차 해내지 못하는 아이돌이 널려 있다. 사회인으로 일만 해봐도 알지. 교과서에서 배웠던 규칙들은 '유연성'이라든가 '융통성' 따위의 이름으로 쉽게 무너지곤 한다는걸. 하지만 내가 느낀 황민현은, 그런 규칙들에서 묘하게 엄격하게 굴 것 같은 부분들이 느껴졌고 그게 나의 힐링 버튼이었다. 내가 마음껏 사랑을 쏟아부어도, 상처받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아껴주지 않아도 괜찮아. 내 사랑에 보답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수많은 ATM 중의 하나로 여겨져도 괜찮아. 다만, 상처받게만 하지 말아줘. 마지막까지 아이돌로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유지해줘.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도와줘. 내가 바라는 건 그것 하나 뿐이다.


뭐 깔끔하게 정리하자면, 얼굴 때문에 입덕했는데 성격이 더 씹덕터졌다는 종류의 이야기일 것이다. 관계성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나중을 위해 기약해둔다. 처음에는 워너원 내에서 단정한 형님 역할을 소화하다가, 만인의 사랑둥이 장난꾸러기가 된 점도 너무 웃기고 귀엽고. 동갑내기 성우와 함께할 때와, 진영이/우진이와 함께할 때, 성운이와 함께할 때가 전혀 다른 것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사랑스럽고. 더위 때문에 싫었던 8월이 좋아진 건 개안즈 생일 때문인데, 사랑하는 민현이가 웃기고 귀엽고 행복하고 다정하고 예쁜 거 다했으면 좋겠다.


민현아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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